세계의 명시/스페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높은바위 2023. 5. 11. 07:13

 

묶인 개

 

내게 있어서 가을의 시작이라는 것은, 프라테로.

석양과 함께, 스산함과 함께 가련해지는

뒷마당 혹은 앞마당 정원수 수풀의 인기척 없는 곳에서,

한마음으로 오랫동안 짖어대고 있는 한 마리의 묶인 개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노랗게 물들어가는 이 무렵은,

어디에 가도 지는 해를 향해서 짖어대는

그 묶인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프라테로……

그 짖는 소리는, 내게는 아무래도 슬픔의 노래로 들리는구나.

그것은 흡사

욕심스러운 마음이 사라져 가는 보물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잡으려고 하는 듯이 생명이라는 생명이

사라져 가는 황금의 계절에

바싹 뒤따르려고 하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스러운 마음이 끌어모아져

이르는 곳에 숨겨진 황금은

환상과 같은 것이다.

마치 아이들이

거울 조각으로 일광과 함께

나비의 그림자나 고엽의 그림자를 잡아서

응달벽에 비추이려 해도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과 같이……

참새나 찌르레기는

오렌지나 아카시아 나뭇가지에서 가지로 태양을 좇아서 점점 높이 올라간다.

태양은 장미색으로, 연보라색으로 점차 약해지고……

이윽고 맥도 끊어져 사라져 가려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영원의 것이 된다.

아직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것처럼.

그곳에서 개는 그 아름다움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날카롭고 격렬하게 짖어대고 있으니……

 

* * * * * * * * * * * * * * *

 

* 후안 라몬 히메네스(Juan Ramón Jiménez : 1881-1958)는 안달루시아의 모게르에서 출생하였다.

소년시절에 세빌랴로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갔으나, 베케르의 시를 대하게 되고서부터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세 때 마드리드에서 R. 다리오, R.M. 발레인클란 등과 친교를 맺었다.

시집 <오랑캐꽃의 마음>, <수련(水蓮)>(1900)을 발표하고, 이어 <슬픈 영창(詠唱)>(1903), <비가(悲歌)>(1908) 등을 발표하였다.

이들 초기 작품은 뛰어난 음악성과 풍부한 색채감이 넘쳐, 이로써 스페인 근대파 최초의 중요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1916년에 세노비아 캄블피와 결혼하여 신혼여행차 미국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그의 시는 일체의 수식을 배재한 '벌거숭이 시'를 지향하게 되었다.

특히 <신혼시인(新婚詩人)의 일기>(1917)와,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그의 문명(文名)을 더욱 높였던 <플라테로와 나>(1917) 이후로는, 모든 수식을 버리고 담담하면서도 밀도 높은 ‘순수시’의 창조에 전념하여 <돌과 하늘>(1919), <안에 있는 동물>(1949) 등 걸작을 발표하였다.

그 작풍은 F. 가르시아 로르카를 비롯하여 에스파냐와 중남미 여러 나라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5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