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한산자(寒山子)

높은바위 2023. 8. 4. 04:09

 

한산길(寒山道)

 

可笑寒山路(가소한산도) : 우스워라, 내 가는 한산(寒山) 길이여!
而無車馬蹤(이무거마종) : 거마(車馬)의 자국이야 있을 턱 없네.
聯溪難記曲(연계난기곡) : 시내는 돌고 돌아 몇 굽이던고.
疊嶂不知重(첩장부지중) : 산은 첩첩 싸여 몇 겹인 줄 몰라라.
泣露千般草(읍로천반초) : 풀잎 잎잎마다 이슬에 눈물짓고
吟風一樣松(음풍일양송) : 소나무 가지마다 바람에 읊조린다.
此時迷徑處(차시미경처) : 내 여기 이르러 길 잃고 헤매나니
形問影何從(형문영하종) : 그림자 돌아보며 “어디로?” 물어보네.

 

* * * * * * * * * * * * * * *

 

* 한산길(寒山道)은 거마(車馬) 자국이 없는, 그러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곳이다.

찰찰 시린 소리를 내며 첩첩 산을 굽이도는 계곡물에 자신의 굴곡 많은 삶을 담아내고, 눈물 같은 이슬을 머금은 풀잎 위로 우뚝 서서 청신한 솔바람 소리를 내는 소나무에 자신의 올연한 정신을 담아내는 비유의 솜씨가 일품이다.

이처럼 생생한 한산의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風景)인 것은 물론, 한산의 내면을 그린 심경(心景)이자 명징한 깨달음의 경지를 그린 선경(仙景)이다.

그러니 이 한산에 이르러 속세의 질서는 모두 길을 잃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 제 그림자를 향해 돌아보며 ‘어디로’라고 묻는 그 절대 고독의 순간이 한산길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 한산길은 한산이 가는 길이고, 한산에 드는 길이고, 한산이 되는 길이다.

멀고도 멀며, 혼자서 가야 하는 외로운 길이다.

그림자를 남기며 끌고 온 과거의 길인 동시에 가고 또 가는 현재의 길이며,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미래의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 있는 곳이 길이고 가는 곳이 길이기에, 굳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며 애써 길을 찾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다 오고서도 다시 어디냐고 묻는 지점이 바로 한산길의 도달점이기도 할 것이다.

 

* * * * * * * * * * * * * * *

 

* 한산자(한산, 寒山子, 691~793 추정)당(唐) 태종(太宗) 정관(貞觀) 연간을 살았으며,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 한암동(寒巖洞:한산寒山)에 은거한 시승(詩僧)이다. 

그러나 실존 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며, 실존했다 하더라도 알려진 것보다는 후대인 당대 말엽을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속가의 성씨와 법호는 알려진 게 없어서 사람들이 그를 한산(寒山), 한산자(寒山子), 빈자(貧子) 등으로 불렀다. 

당대(唐代)에 태주자사(台州刺史)를 지낸 여구윤(閭邱胤)이 편찬한 《한산자시집전(寒山子詩集傳)》과 송대(宋代)의 승려  찬녕(贊寧)이 지은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의 작품이 전하지만, 여구윤 역시 가상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산은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의 습득화상(拾得和尙)과 교유하였으며, 둘이 함께 천지를 행각 하며 시를 짓고 읊기를 즐겼다. 

행각승인 풍간(豊干)과 셋이서 국청사를 드나들며 남루한 차림으로 주방에 들어가 잔반을 먹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이들을 '삼은(三隱)' 또는 '삼성(三聖)'으로 불렀다.

 

전설에서는 한산이 문수보살의  화신이고,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청(淸) 황제 옹정제(雍正帝)가 한산을 '묘각보도화성한산대사(妙覺普渡和聖寒山大士)' 약칭하여 '화성(和聖)'으로, 습득을 '묘각보도합성습득대사(妙覺普渡合聖拾得大士)' 약칭 '합성(合聖)'으로 책봉한 뒤,  세인들이 이 두 고승을 '화합이성(和合二聖)' 또는 '화합이선(和合二仙)'으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