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에는 국적이 없다?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하는 퓨전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기도 하고, 음악과 미술이 어울린 자리에 연극적인 퍼포먼스가 행해지기도 한다. 퓨전이 장르간의 벽을 넘나든다는 뜻의 '크로스오버'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는 기존의 장르들이 마구 뒤섞이고 얽히는 '짬뽕' 문화가 1990년대 후반에야 주류 문화로 떠올랐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음악, 패션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자리잡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이러한 퓨전의 의미가 보다 대중적으로 사용된 것은 음악이 먼저였다.
일반적으로 퓨전하면 '퓨전 재즈(Fusion Jazz)'를 의미했다.
퓨전 재즈는 1960년대 말엽에 나타나 1970년대에 왕성하게 발전했다.
퓨전은 원래의 단어가 지닌 뜻 그대로 A와B를 합치는 것을 말하는데 음악적으로는 한 장르와 다른 장르가 합쳐져 독특한 스타일의 또 다른 장르가 생성되는 것을 말한다.
음악에서 퓨전이 높게 평가되는 다른 장르들의 장점들을 재즈라는 어법 속으로 적절하게 가져왔다는 데 있다.
특히, 재즈와는 엄연히 다른 록의 비트까지 대담하게 끌여들였다는 점은 높게 평가받는다.
흔히들 본격적인 퓨전의 탄생을 196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서 찾는데, 그의 음악은 펑키 재즈에서 아프리카 원시인의 토속적인 비트, 그리고 록과 현대 음악의 일렉트로닉스적인 면까지 고루 가미하고 있다.
퓨전은 '자유'이다.
그렇다면 퓨전 음식은 또 뭔가?
퓨전 음식(Fusion food)란 한 마디로 국적 없는 먹거리다.
퓨전 음식의 선두 주자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민족 구성 자체부터가 '퓨전'이기 때문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이 자연스럽게 섞이게 마련이다.
또한 서양인들의 동양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서양의 절충식이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탄생하게 된다.
퓨전 음식은 형식에 얽매이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요리 방식을 거부한다.
퓨전 음식에는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이 담겨 있다.
현대인의 실용적인 음식 추구에 발맞추어 서양의 소스와 동양의 신비로운 허브가 잘 조화되고, 도미 튀김에 중국 자장 소스를 얹거나 일식 요리에 굴 소스가 쓰인다.
스티이크나 파스타에 간장, 마늘 소스를 가미하기도 하고, 갈비에 서양식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김치버거, 불갈비버거, 불고기피자 등 패스트 푸드에도 퓨전 바람이 분 지 오래다.
퓨전의 복합적인 요리 방법은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제한적인 자유를 느끼게끔 해 준다.
이런 '자유 정신'이 퓨전의 매력이다.
내가 만드는 것은 모두 퓨전이 된다?
패션에도 퓨전 바람이 거세다.
세기말의 가장 두드러진 패션 컴셉은 온갖 패션 사조의 '혼합'이다.
고급 이미지가 강한 명품 스타일에서 1960년대의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히피풍, 도시적 느낌과 반짝임과 금속성 느낌이 강한 테크노풍까지 다종다양하다.
자수를 놓은 청바지, 구슬 등 반짝이 소재가 달린 옷,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소재 제한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만큼 의류 제조기술이 발전하고 디자인이 다양해 소재와 스타일을 횡단하는 복잡한 조합이 가능해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