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도 신분과 계급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옛날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지요.
음악을 예로 들자면 오늘날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각기 다른 계층에서 향유되는 것처럼 옛날에도 '노동요'와 '궁중음악'은 당연히 그 향유 대상이 달랐습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양반층의 그림이란 것은 '매, 난, 국, 죽'을 소재로 한 '사군자'나 중국에서 배워온 '문인화'같이 정해진 소재와 형식에 따라 그리는 고상한 취미생활의 하나였지요.
물론 서민들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양반층 선비들이 일정한 격식에 따라 그린 그림은 고상한 예술품으로 대우받은데 반해서 서민들이 소재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린 그림은 '환'이라고 해서 '마구 그린 조잡한 것' 또는 '흉내 낸 것'으로 취급됐습니다.
또 이런 '조잡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환장이'라고 했습니다.
아~ 흔히 '환쟁이'라는 말을 쓰는데, 직업을 뜻하기 때문에 '환장이'라고 해야 맞지요.
기술자, 곧 장인(匠人)이란 뜻이 있는 경우에는 '-장이'가 표준어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일도 기술로 보지 않는 것인지 화가를 낮잡아 이르는 말도 '환장이'가 아니라 '환쟁이'입니다.
이 글에선 '환장이'로 명하겠습니다.
그런데 흉내 낸 그림, 특히 '환장이'가 남의 그림을 마구 흉내 내서 그린 그림을 '등글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등글기'는 오늘날 용어로 '표절'이란 단어로 대치될 수 있겠지요?
'환장이'는 이른바 실용미술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는 힘들여 창작을 하는 것보다, 유명한 그림을 흉내 내서 '생산성'을 높이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환장이'들 중에는 그림을 마구 그려대기도 했지만 은연중에 대단한 솜씨를 발휘해서 오늘날까지 길이 내려오는 훌륭한 예술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름 없는 이들의 빼어난 솜씨는 민화의 형태로, 또는 유명한 건축물 따위와 아울러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도 많습니다.
'표절'! 즉 '등글기'를 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요즘 저작권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일어나는데 남의 예술 작품을 흉내 내는 것 자체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