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벨 리(Annabel Lee)
오래고 또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여러분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다.
너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사랑하니
그 밖에는 아무 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이였고, 그녀도 아이였으나,
바닷가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했으나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날개 돋친 하늘의 천사조차도
샘낼 만큼 그렇게 사랑하였다.
분명 그것으로 해서 오랜 옛날
바닷가 이 왕국에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하여
그녀의 훌륭한 친척들이 몰려와
내게서 그녀를 데려가 버렸고
바닷가 이 왕국 안에 자리한
무덤 속에 가두고 말았다.
우리의 절반도 행복을 못 가진 천사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샘낸 것이었다.
아무렴! 그것이 이유였었다.
(바닷가 이 왕국에선 모두가 아시다시피)
밤 사이에 바람이 구름에서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인 것은.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훨씬 강했다.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로 해서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밑에 웅크린 악마들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내 영혼을 갈라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달빛이 비칠 때면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게 되고
별빛이 떠오를 때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눈동자를 느낀다.
하여,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눕노니
거기 바닷가 무덤 안에
물결 치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곁에.
* E·A·포우(1809-1849)는 언어가 지닌 미묘한 뉘앙스를 추구한 시인이다.
포우는 “관념은 음악이 결여되면 그 명확성으로 말미암아 산문이 되고 만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 이유는 시의 필요조건이 애매 모호성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애너벨 리>를 읽고 그 의미를 음악의 상태에까지 환원할 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포우가 의도한 바였을 것이다.
포우는 “시란 음악을 통해서 영원을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시는 184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죽은 아내 버지니아 클램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