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러시아

튜체프

높은바위 2015. 9. 2. 08:29

 

           바다 위의 꿈

 

바다도 폭풍우도 우리들의 통나무배를 흔들었다.

잠자던 나는 물결의 온갖 변덕에 몸을 맡겼다.

두 무한이 내 내부에 있어,

나를 멋대로 가지고 놀았다.

내 둘레에서 심벌즈처럼 바위가 울리고,

바람은 서로 불러대며 파도가 노래를 불렀다.

나는 소리의 혼돈 속에 귀가 멀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소리의 혼돈 위를 내 꿈은 날고 있었다.

아프게 밟고 주술에 걸린 듯 입을 다문,

꿈은 우르릉거리는 어둠 위에 가벼이 잠들고 있었다.

 

열병의 빛 속에 꿈은 그 세계를 펼쳤다.

대지는 녹색으로 덮이고 하늘은 빛나며,

미궁의 뜰, 궁전 누각,

그리고 말없는 군중의 대군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낯선 많은 얼굴들을 알아보았다.

마법의 생물, 신비로운 새들을 보았다.

생물의 정수리를 밟고 신처럼 나는 걸었다.

그러자 부동의 세계는 내 밑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런 모든 환상을 꿰뚫고 마술사의 퉁소처럼,

나에게 바다 밑의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조용한 환상과 꿈의 영역 속에도

포효하는 파도의 포말이 끼어들었다.

 

 

 

* 튜체프(Fyodor Ivanovich Tyutchev, Фёдор Иванович Тютчев : 1803-1873)는 오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모스크바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1822∼1839년 외교관으로 뮌헨 ·토리노에 재임하였다.

그는 국외에서 22년 동안이나 지냈다.

1844년 귀국하여 외무성에 근무, 1858년 외국문서검열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그는 러시아 고전주의와 독일 낭만파적 정신의 소유자로, 철학적 서정시를 써 러시아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가 되었다.

 

1819년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1820년대에 많은 작품을 썼으나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850년대에 N.A.네크라소프에 의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작품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반영하여 《낮과 밤》(1839) 《아, 예감에 찬 나의 영혼이여!》(1855) 등에서 볼 수 있는 복잡성과 모순에 차 있다.

 

1820년대에는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유애호의 분위기 속에 빠졌으나, 1840년대에는 슬라브파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대적 변혁을 예리하게 감지하였기 때문에, 그 서정시는 《키케로 Tsitseron》(1830) 《말라리아》(1830) 등에서와 같이 깊은 불안과 비극성을 띠었다.

 

그의 여러 작품에는 자연의 ‘폭풍우’나 ‘뇌우(雷雨)’를 즐겨 묘사하였으며, 자연에 의탁된 인간의 이성과 감정과의 상극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그 작품을 꿰뚫고 있는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으로 이미지의 풍부함, 스타일의 장중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후기 작품 《최후의 꿈》(1852) 등에서는 인생에 대한 강한 애정이 표출되었다.

사랑과 자연을 노래한 대부분의 서정시는 깊은 사색성이 뒷받침된 균정미(均整美)를 보여 주었는데, 이러한 면에서 A.S.푸슈킨의 최대의 후계자로 일컬어진다.

그의 첫 전집은 그가 죽고 난 1900년에야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두산백과 참조)

Poco - sea of heartbr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