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전남 무안의 배 씨 부인의 기개(thymos)와 수치(aidos)

높은바위 2024. 12. 7. 06:52

 

열두 살 난 지립(之立)과 열 살 난 지발(之發),

이 두 아들이 왜적(倭賊)이 쳐들고 있는 작두 아래,

목을 나란히 하고 눈을 멀뚱 거리고 있다.

 

그 네 개의 눈을 곳간(庫間)에 숨어서 보고 있는 어머니 배(裵) 씨(務安士人무안사인 尹起윤기의 妻처)는, 그가 제 발로 걸어 나가 왜적에게 겁탈을 당하면, 이 두 아이가 살고, 숨은 채 버티고 있으면 작두에 두 아들의 목이 동강이 나는 택일(擇一)의 시련에 놓인 것이다.

프랑스 왕국의 비극작가 장바티스트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년 12월 22일 ~ 1699년 4월 21일)의 비극(悲劇)에서 헬렌적(情的정적)인 것과 헤브류적(理的리적)인 것의 택일을 둔, 이 같은 갈등이 곧잘 소재(素材)가 되었었다.

이 한국의 어머니 배(裵) 씨는, 그 더없이 소중한 것인 두 아들(헬렌)의 목을 작두 칼날에 나뒹굴게 하고, 정절(貞節=헤브류)을 구제하였다.

"로마의 병사가 신(神)의 아들보다 강하다면 한국의 여인들은 신의 딸보다 강하다. 그들은 이 사회가 그들을 처참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을수록 그 수난을 이기는 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듯하였다."

이것은 부나비처럼 순교하는 한국 여인들에 대한 다블뤼(Marie-Nicolas-Antoine Daveluy, 1818년 12월 31일, 프랑스 아미앵 출생 ~ 1866년 12월 30일, 충남 보령 갈매못 선종; 천주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신부의 소감이다.

여인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웃도는 절실한 그 모성(母性)을 순교시키는 배 씨도 신의 딸보다 강하다.

하지만 죽은 두 아들의 간(肝)을 꺼내어 나무에 걸어놓고 가는, 그 처절한 모습까지도 숨어 보면서, 정절을 지키게끔 그 총체적 한국 여인의 한 단위(單位)에 강요한 가치(價値)가 뭣인가.

그 단위는 그 가치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에 적응되게끔 강요를 받았으며, 그리하여 그 도의(道義)의 가치관이 준 정여열녀(旌閭烈女)라는 영웅칭호의 그늘에서, 배(裵) 씨는 발광(發狂)하여 떠돌다 죽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