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장마

높은바위 2023. 8. 24. 06:42

 

우리 속담에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불이 나면 타다 남은 것이 있으나, 수재를 당하여 한번 물에 씻겨 내려가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라는 말도, 가뭄이 오래 계속되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다.

장마는 주로 6월 말부터 7월 초에 내리는 비를 일컬었지만, 처서인 어제부터 계속되는 우기(雨期)는 정말 우려가 많이 된다.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윤이(尹彝)와 이초(李初)의 변에,

목은(牧隱) 이문정(李文靖) 공과 양촌(陽村) 권문충(文忠) 공이 모두 체포되어 청주옥(淸州獄)에 갇혀, 국문(鞠問)이 매우 엄준하여 사태의 귀추를 예측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루는 새벽부터 비가 오더니, 한나절이 못되어 산이 무너지고, 물이 솟아올라 성문이 도괴되어, 범람해 들어와 가옥이 모두 침몰하고, 문사관(問事官)이 표류하다가 압각수(鴨脚樹:은행나뭇과 낙엽 교목)를 잡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매 석방하고 묻지 않으니, 이문정과 권문충이 이로 말미암아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다.

 

처음 옥천군(玉泉君) 유창(劉敞)은 두 분이 무고를 당하여 옥에 피체됨을 듣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두 선생은 하늘이 내신 사람이라 반드시 천변(天變)이 있을 것이다." 하더니, 그 말이 마침내 증험되었다.

 

어느 사람이 시에 쓰기를,

"불행히도 유언(流言)이 주공(周公: 주 나라 문왕의 아들, 무왕의 아우, 정치가)에게 미쳤더니,

홀연히 가화(嘉禾:낟알이 많이 달린 벼)가 큰바람에 일어났네.

듣건대, 서원(西原) 땅에 홍수가 넘쳤다 하니,

이에 천도(天道:하늘이 낸 도리)가 고금이 같음을 알겠도다." 하였다.

 

재차 오는 장마로 이같이 사람도 살리고,

몇 달째 이어져 온 불볕더위가 식어, 계절의 본미(本味)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