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위고

높은바위 2015. 1. 24. 18:36
 

올랭피오는 올림포스 산의 뜻으로 위고가 시집 <내심의 소리>(1837) 이래로 사용한 자칭으로서 세상 평판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로 불투명한 세계를 내려다 보는 위고의 사상과 예술의 상징적 분신이다.

이 시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자연은 파리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인 비에브르 골짜기라고 일컬어지는 지방으로 위고는 가족과 함께 1834년과 35년 가을을 그 근처에 있는 친구의 소유지에서 보냈다.

애인인 줄리에트 도루에도 이 지방의 레머스라는 마을의 농가를 세내어 살면서 두 사람은 그 농가를 중심으로 하여 부근의 숲과 언덕에서 매일 뜨거운 정열을 불태웠다.

올랭피오라는 분신이 탄생한 것은 그때 그 자연 속에서이다.

위고는 1837년 가을에 혼자서 이 땅을 방문하였다.

농가의 주인은 부재여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자연은 회상에 충실치 못했고,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모든 것이 돌변한 사실을 느끼고, 그 인상을 사랑의 회상과 비애라고 하는 주제로 하여 거기 머무는 동안에 즉시 작품화한 것이 이 작품이다.

자필 원고에는 제목이 없고, "나의 줄리에트를 위하여, 1837년 10월, 비에브르 골짜기를 방문하여 짓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시는 단순히 낭만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시 가운데서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라마르틴의 <호수>와 뮈세의 <회상>과 더불어 낭만파 대시인의 3대 애정시로 꼽히고 있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 1802-85)는 모름지기 프랑스의 모든 시인들 중에서 가장 웅변적인 시인이다.

이 낭만파의 거장은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을 부친으로 브장송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에서 보낸 뒤 파리에 정착하였다.

20세 때 벌써 최초의 시집을 출판하였고, 희곡 <크롬웰>(1827) 서문에서는 낭만주의 선언을 시도하기도 했다.

소설로는 <노트르담 드 파리>(1831)와 <레미제라블>(1862)이 유명하다.

시집으로는 서사시 <제세기(諸世紀)의 전설>을 비롯하여 서정시집 <빛과 그림자>(1840) 등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인류의 교화자요, 예언자로의 사명을 타고 났으며, 국민의 지도자, 우주의 음향, 신의 통역자 임을 자처하면서 하류계급 · 피압박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그의 작품 도처에 표현했다.

 

 

 

                    올랭피오의 슬픔

 

어두운 들은 아니었다, 암울한 하늘은 아니었다.

아니, 아침 해는 빛나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에 누워 있는 대지에.

하늘은 향기로 목장은 초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찌기 정열이 그렇듯 마음을 상처내 주던 여기에

내가 다시 찾아왔을 때에!

가을은 미소 짓고 있었다. 언덕은 평지를 향하여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숲을 기울고 있었다.

하늘은 황금빛이었다.

새들은 만물이 사모하여 부르는 하느님을 향해

모름지기 인간이 무슨 말인지 말하며 노래한

거룩한 가락에 맞춰 노래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보고 싶었다.

숲 속의 샘과 주머니 털어 적선하던 그 오두막집

가지 숙인 이 늙은 물푸레나무

숲 속의 눈에 띄지 않는 사랑의 은신처

일체를 잊고 두 영혼이 용해될 때까지 그 속에서

입맞추던 나무 구멍을!

 

그는 찾았다, 마당을 또 외딴 집을.

오솔길을 내려다보는 문과 철책과

경사진 과수원을.

그는 창백하게 걷는다 ─ 무겁게 딛는 발자취 따라

그는 본다, 아아! 하나하나의 나무에서 일어나는

지나간 날의 망령들!

 

그는 듣는다, 숲에서 그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이고

바람은 마음 속의 모든 것을 떨게 하면서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떡갈나무를 뒤흔들며 장미를 스쳐

하나하나의 사물 위에 깃들려 하는

만물의 혼인가 여겨진다!

 

쓸쓸한 숲에 떨어지고 있는 나뭇잎은

그의 발 밑에서 땅으로부터 날아 오르려고

마당 한가운데를 달린다.

우리의 추억 역시 그와 같이 때에 따라 혼이 침잠하게 될 때

상한 날개로 한 차례 날아 오르고서는

즉시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는 오래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들판에 자연이

장엄한 형태로서 나타나 있는 것을

그는 저녁 때까지 꿈에 잠겼다.

하루 종일 그는 방황했다, 골짜기의 물을 따라

하늘의 숭고한 얼굴과 호수의 맑은 거울을

하나하나 모두 찬미하면서!

 

아아! 생각나는 감미로운 사랑의 모험.

천한 종처럼 들어가지도 못하고 울타리 너머로

모양을 살펴보면서

그는 온종일 방황했다. 밤이 날개 펼 무렵

그는 느꼈다, 무덤과 같이 쓸쓸한 마음을

그리고 외쳤다.

 

오오, 이 서글픔! 혼의 착란. 나는 알려 했다,

정열의 액은 어느 만큼 아직 이 병에 남았는지.

나는 보려 했다, 내 마음이 여기에 남긴 것들을

이 행복의 골짜기가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실로 짧은 세월로 족하다!

신선한 표정의 자연, 어찌 너를 빨리 잊고 마는가!

그 탈바꿈 사이사이에 왜 무참히 자르는가

우리의 마음이 맺어져 있는 신비의 실을!

 

우리 둘이 묵던 나뭇잎 방은 숲이 되었다!

우리 둘의 머리글자를 새긴 나무는 말라 버렸는가 쓰러졌는가!

우리 둘이 키운 정원의 장미는 도랑을 넘어

놀러 오는 아이들 발길에 망가지고 말았다.

 

샘은 돌담에 싸였다. 무더운 오후 숲에서 내려와

장난스럽게 그녀가 마시던 샘물

손바닥에 물을 떴었지, 아아 귀여운 요정이여,

그리고 흘렸지, 손가락 사이로 예쁜 진주를!

 

길은 험해서 울퉁불퉁 돌이 삐졌다. 지난 날에는

깨끗한 모래길이었다 ─ 거기 또렷이 박힌

그녀의 작은 발이 그것보다 너무나 큰 대조를

귀엽게 웃는 듯 보였다. 내 발과 나란히 서서!

 

헬 수 없는 세월을 겪은 길가의 바위

일찌기 나를 기다리기 위해 그녀가 앉았던 곳

그 돌 역시 닳아졌다, 저녁 길에

삐걱거리며 굴러 가는 수레바퀴에,

 

숲은 이쪽이 줄어들었고 저쪽이 퍼졌다.

우리 둘의 것이었던 모든 것에서 살아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불이 꺼져 싸느랗게 된 잿더미처럼

수많은 회상은 바람따라 없어진다!

 

우리 둘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의 때는 지나갔는가?

오고 가는 그 때는 아무리 소리쳐도 헛되단 말인가?

내가 울고 있건만 바람은 나뭇가지와 희롱하고

집은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 둘이 머물던 곳에는 다른 사람이 머물리라.

우리 둘이 오던 여기에 이제 다른 사람이 오리라.

일찌기 우리 둘의 혼이 꾸기 시작한 꿈을

이제는 그들이 보리라, 영원히!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는 모두 다 볼 수 없기에,

인간의 가장 나쁜 점도 가장 좋은 사람처럼

우리 모두는 같은 곳에서 꿈을 깨어난다.

모든 것은 이 세계에서 시작되고 모든 것은 저쪽에서 끝난다.

 

그렇다, 다른 사람들, 흠없는 남녀가 찾아오리라.

이 행복하고 한적한 매혹의 안식처에서

호젓한 사랑에 섞여지는 자연 풍물의

몽상과 장엄 모든 것을 길어 올리리라!

 

우리의 들과 오솔길과 은신처를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리라.

내 사랑하는 이여, 네 숲은 낯선 남녀의 것이 되리라.

체면을 모르는 여자들이 목욕하러 와서

네 맨발이 닿은 깨끗한 물결을 흐리게 하리라.

 

그래! 여기서의 우리 사랑은 헛되었었단 말인가!

꽃 피는 이 언덕, 정열의 불꽃을 섞으며

우리 두 존재가 하나 된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데 무감각한 자연은 재빨리 모든 것을 빼앗았다.

오오! 말하라 골짜기여, 맑은 시내여, 익은 포도여,

새둥지 가득한 가지여, 동굴이여, 숲이여, 딸기여,

너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속삭이는가?

다른 사람을 향해 노래하는가?

 

우리는 너희를 친절하고 주의 깊고 엄격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우리의 메아리는 깊이 너희 소리 속에 용해되었다!

우리는 아주 열심히 귀 기울였다. 너희 비밀을 범하지 않고

너희들이 이따금 말하는 심원한 말에!

 

대답하라 해맑은 골짜기여, 대답하라 쓸쓸한 땅이여,

아아, 마을에서 떨어진 이 아름다운 장소에 깃든 자연이여,

영원한 명상으로 돌아가 누운 자들이 취하는

그 모습으로 우리 둘이 무덤 안에 잠든 때에도

 

그대는 계속해서 무감동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그 사랑과 더불어 죽어 누워 있는 우리를

그대의 평화로운 안식 속에서

여전히 미소 지으며 여전히 노래할 것인가?

 

그대의 산이나 숲이 즉시 분별해 주는 망령의 모습으로

그대의 은신처에서 방황하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그대는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을 것인가,

재회한 옛 친구에게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은밀한 사실들을?

 

그대는 슬픔과 탄식마저 없이도 볼 수 있는가,

이전에 우리가 거닐던 그 자리에 우리 옛 그림자가 방황함을.

또한 눈물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샘물가로

사뿐히 껴안으며 나를 인도하던 그녀의 모습을?

 

눈뜬 사물 하나 없는 어두움 속에 사랑하는 남녀가

그 도취를 은밀히 그대의 꽃그늘에 기대어 있다면

그 귀에 그대는 다가가 속삭여 주지 않겠는가.

"너희들 살아 있는 자여, 죽은 자를 생각하라!"

 

신은 잠시 동안 우리에게 목장과 샘과

소근대는 넓은 숲과 깊은 부동의 바위굴과

푸른 하늘과 호수와 평야를 주시고,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마음과 꿈과 사랑을 안겨 주신다.

 

이윽고 모든 것을 거두어 가고, 신은 우리의 불꽃을 불어 끄신다.

우리가 불빛 밝히는 동굴을 신은 어두움 속에 잠기게 한다.

신은 우리의 넋이 새겨진 계곡을 향해 우리의

흔적을 지우고 우리 이름을 잊으라고 하신다.

 

그래라! 우리를 잊어라, 집이여 마당이여 나무 그늘이여!

잡초여, 우리 문을 황폐하게 하라! 가시덤불이여, 우리 발자국을 가려라!

새들아 노래하라! 시내여 흘러라! 나뭇잎이여 울창하라!

너희는 잊더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못한다.

 

너희는 우리 사랑의 반영 그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행 도중에 만나는 오아시스이다!

오오 골짜기여, 너는 최상의 은신처,

네 품안에서 우리는 마주 손잡고 울었었다!

 

정열은 나이와 더불어 사라지고, 그 어떤 것은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고, 어떤 것은 비극의 칼을 늘어뜨리고서

떠들썩한 유랑 악단의 한 패거리처럼

언덕 너머로 멀리 무리 지어 사라져 간다.

 

그러나 사랑이여, 그 무엇도 매혹스러운 너만은 지울 수 없다!

안개 자욱한 속에서도 빛나는 너, 타오르는 횃불, 계속 불타는 등불

너는 기쁨으로 그리고 특히 눈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젊을 때는 너를 저주하고, 나이 들면 너를 찬양한다.

 

세월의 무게에 고개가 힘없이 수그러지는 날,

인간이란 계획도 목적도 환상도 없고

이제 자기가 묻힐 묘석밖에 없고

그 아래 덕망도 사랑의 환상도, 모두 모두 묻혀지는 것을 느끼는 날,

 

우리 혼이 꿈꾸며 우리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

드디어 얼음으로 화한 우리 마음 안에

흡사 전장에서 시체를 세듯 하나 또 하나

쇠퇴한 고뇌와 사라진 몽상을 셀 때,

 

현실의 대상, 활짝 웃는 세계에서 멀고도 먼,

등불을 손에 들고 그 무엇을 찾듯이

그 혼은 어두운 언덕길을 지나 느릿한 걸음으로

내부의 심연에 내동댕이쳐진 쓸쓸한 곳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 어떤 빛도 비치지 않는 칠흑 속

모든 것이 다해졌다 생각되는 곳에서 혼은 느낀다.

아직 무엇인가 베일에 가려 숨쉬고 있음을 ─

바로 그것은 어둠 속에 잠자는 그대이려니, 오오 거룩한 회상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