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
공백인 모든 책장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도1)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들 위에2)
전사들의 총칼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도
새 둥지에도 금송화에도
내 어린 날의 메아리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의 신비스러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약혼하였던 시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하늘빛 누더기 옷들에
녹슨 태양이 비친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림자들의 방앗간 위에3)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는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또 배들 위에
넋을 잃은 멧부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구름들의 뭉게거품 위에
소낙비의 땀방울들 위에
굵고 또 멋없는 빗방울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온갖 빛깔의 종들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4)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 길 위에
사람 넘쳐나는 광장들 위에5)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켜지는 램프 불 위에
꺼지는 램프 불 위에
모여앉은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거울의 또 내 방의
둘로 쪼개진 과일 위에
속 빈 조가비인 내 침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앙증맞은 귀여운 내 강아지 위에
그 쫑긋 세운 양쪽 귀 위에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6)
내 문턱의 발판 위에
낯익은 가구들 위에
축복 받은 넘실대는 불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란 얼굴들의 유리창 위에
침묵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있는 입술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은신처들 위에
무너진 내 등대들 위에
내 권태의 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욕망도 없는 부재7) 위에
발거벗은 이 고독 위에
죽음의 걸음과 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되돌아 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입어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하노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 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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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 행의 '공백인 책상'을 열거함인 듯.2) 이 연은 어릴 때 읽은 이야기책의 삽화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3) 빛과 그림자가 어울리며 돌아가는 이미지. 풍차.
4) 이미지들의 연속에 의해 앞의 연들에서 전개된 자연의 진리.
5) 자연에서 인간으로의 이행.
6) 그의 동물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다.
7) 마음의 부재·방심·허탈.
* 엘뤼아르(Paul Éluard : 1895-1952)는 스페인 동란 이후 뒤늦게 정치적 움직임에 참여한 시인으로, 브르통이나 아라공보다는 훨씬 온건하며, 순수한 시인으로서의 기질과 천분을 가졌다.
정치참여 이전의 시는 대개가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가 태양처럼 비춰주는 내면 세계를 응시하며, 부부가 한덩어리로 융합되어 영원히 이데아를 그리는 듯한 신앙과 기도와 같은 사랑의 노래이다.
엘뤼아르에게 있어 하나의 전기가 된 것은 스페인 전쟁의 시기라 할 것이다.
쉬르리얼리즘 시인으로서의 엘뤼아르의 시는 의지에 구속되지 않은 무의식의 영역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그에게는 수 많은 독자들이 쉽게 친할 수 있는 리듬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이 성격은 후기의 시작에 있어서도 더욱 뚜렷이 볼 수가 있고, 그의 인간애와 자유에 대한 사랑을 프랑스 시의 전통적인 서정성과 결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두 시기에 있어서의 엘뤼아르는 실로 하나의 시인인 것이며, 그가 노래한 최초의 시로부터 그 최후에 이르기까지 비록 심화되고 확대된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1936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쉬르리얼리즘은 사상이 만인 공동 소유의 것임을 밝혀주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