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그외 나라

아르헨티나: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높은바위 2024. 4. 30. 08:23

 

시학(詩學)

 

시간과 물로 이루어진 강을 보며

시간은 또 하나의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

우리 또한 강처럼 흘러간다는 것과

얼굴들도 물처럼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깨어있음은 꿈꾸지 않음을 꿈꾸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우리들의 삶이 두려워하는 죽음은, 꿈이라고 부르는,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죽음을 느끼는 것.

 

하루와 일 년에서 인간의 나날과

해(年)들의 상징을 보며

그 해들의 모욕을 음악 한 소절, 작은 중얼거림,

혹은 하나의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 속에서 꿈을 보는 것.

황혼 속에서 슬픈 황금을 보는 것.

그것이 가련하지만 불멸하는 시(詩).

시는 여명과 황혼처럼 돌아온다.

 

때때로 오후에는 어느 얼굴 하나가

거울 저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예술은 진짜 자기 얼굴이 비치는

그 거울 같은 것.

 

경이(驚異)에 지친 오디세우스는 멀리서

푸르고 소박한 고향 이타카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예술은 영원의 푸른

이타카이지, 경이의 이타카가 아니다.

 

또한 예술은 끝없는 강물 같은 것.

흐르고 머물고,

무상(無常)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수정(水晶)이 된다.

끝없는 강물. 그처럼 동일자(同一者)이며 타자(他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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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1986년 6월 14일 스위스 제네바)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직을 맡았다.

연작 형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독특한 소설 《픽션들》로 유명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도시의 아방가르드(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모더니즘 운동)’를 주도하였다.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작품집 《픽션들》(1940)과 《알레프》(1949)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시와 논픽션, 이야기체 수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후기 작품 가운데 《칼잡이들의 이야기》(1970)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