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신앙(信仰)

높은바위 2024. 6. 11. 07:34

 

사람들은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양분되어 있다.

세계의 인구를 크리스천, 회교도, 불교도, 배물(拜物) 교인 등등으로 나눌 수 있다.

 

신(神)의 존재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이 있다.

 

신이 우주에 대해 초월적으로 존재하며 늘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격적인 신이라는 유신론(有神論), 

신을 우주 저 멀리에 초월해 있는 인격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이성(理性)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곁에 펼쳐져 있는 자연(自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이신론(理神論), 

우주 만물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 

세계가 신에게 포함되나, 신이 세계 그 자체는 아닌 것을 말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 만유내재신론세계내재신론), 

'왜 신은 세계를 만들고 방관하는가.' 하는 질문과, 범신론에 대한 '세계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안된, 즉 세계는 곧 신이므로, 신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면서 신과 동일한 세계도 동시에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는 범이신론(pandeism), 

몇몇 명제(대부분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 또는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의심이 바탕이 되어 성립된, 절대적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을 취한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

 

이런 신의 존재에 대한 여러 관점에서도, '누가 나[我]를 만들었나, 누가 신(神)을 만들었나' 하는 문제를 가져온다.

모든 것이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물은 시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우리 상상력의 빈곤 때문일 것이다. 

원인이 없어도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신처럼 세계도 원인이 없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687년 자연법칙에서 나온 아주 보편적인 이론이 있었다.

뉴턴의 만유인력(萬有引力) 법칙에 따라 태양을 돌고 있다고 설명하였고, 신의 명령으로 별들이 이렇게 돌게 된 것이라고 편리하고 단순한 설명으로 인력법칙의 설명을 더 이상 추구할 수고를 덜어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시작한 좀 복잡한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 우리가 알던 자연법칙이란 것은 실은 인습(因習) 임을 알게 된다. 

우주 공간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1야드는 3피트이고, 나침반(羅針盤)의 북쪽과 지도상의 북쪽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에, 나침반의 북쪽과 지도의 북쪽을 수정하여, 주기적으로 지도를 제작해야 한다는 것, 또 그러한 기준이던 진북(眞北)인 북극성도 움직인다는 사실이 자연법칙이다.

자연법칙이 다른 법칙의 모체라는 생각은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을 혼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자연법칙의 일관성은 깨어지고, 신이 만든 법칙에 어떤 이유가 실제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는 신 자신이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 셈이 되며, 신의 실재(實在)는 어떤 오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도덕적인 장막으로 가리어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참된 이유는 이론 추구와는 관계없다고 본다.

그것은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사람에게 덕성(德性)을 갖추어 주기 때문에 종교를 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신앙을 지키지 않으면 다 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를 지켜 온 사람들이 더 악했던 시기도 있었다.

종교란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잔인한 일이 가해지고, 지금도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신앙의 역할은 이 세상의 고통을 덜어 주고, 인간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