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유유자적(悠悠自適)의 삶을 위하여

높은바위 2024. 6. 7. 06:57

 
'유유자적(悠悠自適)'이란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이라고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다.
 
날이면 날마다 세상은 어지럽고, 나라 간 사람 간의 경쟁은 끝이 없는 달음질이고, 뉴스를 보면 날마다 뒤숭숭한 소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성경의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며 삶이다.
 
어느 산 중에 스님이 한 분 살고 계셨다.
수행력이 높다고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스님과 신도가 제법 많았다.
신도 중에 사하촌(寺下村)에 살면서 절에 자주 다니며,
스님 공양도 지어주는 신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가끔 딸을 데려오곤 했다.
그러다 그 딸이 스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알려 스님과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어느 절 스님이 아랫마을 사는 아무개의 딸을 좋아한다더라.'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소문을 접한 신도들은 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스님은 놀라거나 분한 기색도 없이, "아, 그래요?" 하고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잘못하면 딸아이의 신세만 망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스님이 아랫마을에 사는 아무개 하고 동침하여 아이를 갖게 했다.'라는 내용이 되었다.
그 소문을 들은 신도들은 스님을 찾아와 따지면서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래도 스님은 여전히 평정심을 잃지 않고 "아, 그래요?" 하면서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그 후로 몇 사람이 가서 물어봐도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악소문을 낸 모녀는 점점 죄의식에 불안해져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병이 날 지경이 돼서야 스님을 찾아가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스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 그래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머잖아 신도들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도들은 스님을 찾아가 한결같이 그 못된 것들을 비난하면서, 아주 혼내주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스님은 이번에도 아무런 내색 없이 "아, 그래요?"라며 답할 뿐이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분명한 것은 주변 사람들은 흥분하고, 괴롭고, 분노했지만, 스님의 마음은 일관되게 편안했으리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발생하고 해결될 때까지 괴롭고, 분노하고, 흥분하지만, 정리되어도, 기도를 해도,
분노와 슬픔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는 삶,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좋은 소문에도 나쁜 소문에도 끄떡하지 않는 도(道)의 길은 언제까지 어디까지 수행하여야 할까.
 
한번 날랐다 하면 아주 높이 떠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유유히 천 리를 난다는 신천옹(信天翁=앨바트로스:albatross)의 삶을 꿈꾸면서...
마음을 닦고, 마음을 비우고, 변함없는 마음,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더더욱 수행정진(修行精進)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