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독일

볼프 비어만(Karl Wolf Biermann)

높은바위 2023. 8. 23. 03:19

 

정작 나 스스로는 도울 수 없구나

 

사랑으로 고민하는 친구가 찾아오면
나는 말한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너, 어리석게 몸을 퍽퍽 긁지 마!
수많은 기적으로 지구가 거대한 거야
세상에는 기발하게 영리한 녀석들과
놀라운 여자들이 즐비하지 않니


이봐! 질투심은 우스꽝스러운 거야
질투로 괴로워하는 자는 가소로워!
이를 잡아 대말 타게 할 수도 있어
- 정작 나 스스로는 도울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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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 selber helfen kann ich nicht

 

Ich leckte manchem Lump die Wunden
Und half schon manchem Mistvieh auf
Tja, wer ins Bett geht mit den Hunden


- der steht mit Fl hen wieder auf
Hab Schweinen B ren aufgebunden
Gott und die Welt - ein Spottgedicht
Ich brachte Tote schon zum Lachen


Und zerrte manchen Wurm ans Licht
Ich kann 'ner Laus wohl Stelzen machen
- mir selber helfen kann ich n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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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프 비어만(Karl Wolf Biermann, 1936년 11월 15일 ~ )은 독일의 음유시인이며 구동독의 반체제 저항시인이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아버지 다고베르트 비어만과 어머니 엠마 비어만의 외아들로 출생한다. 

공산주의자이며 유대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 석 달 전 나치에게 체포되어 8년간의 옥살이 끝에 1943년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다.

죄목은 함부르크 조선소에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지하 공산주의 신문을 제작, 유포하고 태업을 주도했다는 것이었다.

독일공산당 당원이었던 어머니는 아들이 공산주의자로서 인류를 구원하는데 일조하는 인물이 되길 원했다.

1953년 17세에 홀로 서독 함부르크에서 동독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동독으로 이주한 후 가데부슈(Gadebusch)의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1955년 대학입학자격시험(Abitur)에 합격하고 동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한다.

1957년 학업을 중단하고 2년간 브레히트가 창설한 베를린 앙상블의 연출조수로 일하기 시작한다.

브레히트의 변증법적 연극을 학습하며 순수예술보다는 참여예술을 중시하는 브레히트의 계몽주의적 문학관을 습득한다.

1959년 훔볼트 대학에 복학하고 전공을 철학과 수학으로 바꾼다.

 

1961년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에 위치한 양계장을 극장으로 개조하여 '베를린 노동자 및 대학생극단(Berliner Arbeiter- und Studententheater)'을 창설한다.

1962년 처녀작인 <<베를린 결혼식(Berliner Brautgang)>>이 베를린 노동자 및 대학생극단 창단기념연극으로 시연되지만 끝내 공연되지 못하고 당의 검열에 의해 공연금지 조치를 당한다.

12월 동독예술원 시예술분과위원회의 주관으로 훔볼트 대학에서 열린 '서정시의 밤'에 출연해 동독 문학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하지만 이 자리가 동독에서 공식적으로 출연한 마지막 무대가 된다.

귀국 보장을 받고 갔던 서독 쾰른의 시낭송회를 마친 뒤 동독 시민권을 박탈당함으로써 대규모 구명 운동이 동독에서 벌어졌고, 연이어 일련의 동독 작가의 망명사태를 낳은 문학사적 소용돌이를 말함이다.

그는 이제까지 모두 악보가 첨부된 일곱 권의 시집을 냈는데,「철사줄 하프」를 비롯한 네 권의 시집은 동독에 있는 동안 서독에서,「프로이센의 이카루스」등 3권의 시집은 서독에 온 이후에 간행하였다.

 

구동독의 대표적인 반체제 저항시인 볼프 비어만은 자신이 지은 시를 작곡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비어만은 민요풍의 서정성과 쟁론적인 정치성을 결합시켜 독보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탁월한 시인일 뿐 아니라 독일분단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타락한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해 미운털이 박힌 비어만이 동독에서 추방된 일은 비어만을 살아 있는 신화로 만들었지만, 그 신화에 가려 정작 그의 문학은 실종되기 일쑤였다.



볼프 비어만은 자기 자신을 쓰면서 그의 시대를 기록하는 공중의 서기이다.

시대의 부조리와 추악함에 저항할 때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상처를 노래할 때나,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고 했다.

고희를 훌쩍 넘기고 희수를 목전에 둔 나이에도 비어만은 여전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