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보들레르

높은바위 2015. 1. 29. 07:08

 

 

 

                        신천옹(信天翁)

 

흔히 재미삼아 뱃사람들은

커다란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르는

이 새는 한가로운 여행의 이 동반자이어라.

 

일단 갑판 위에 내려놓으면

이 창공의 왕은 어색하고 수줍어

가련하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그들 옆구리에 끌리게 둔다.

 

이 날개 달린 나그네, 얼마나 어설퍼 기가 죽었는가!

전엔 그처럼 아름답던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초라한가!

어떤 친구는 파이프로 그 부리를 건드려 약을 올리고

다른 친구들은, 창공을 날던 이 병신을 절름대며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

폭풍 속을 넘나들고 포수를 비웃지만

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

그 크나큰 날개는 오히려 걸음을 막고 만다.

 

 

* 제목인 <신천옹>은 새 이름으로 몸은 크고 날개와 꼬리는 검다.

원이름 그대로 알바트로스(Albatross)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는 뛰어난 예술상의 재능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세술이 서툴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시인을, 붙들린 신천옹 새에다 비겨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작자의 시집 <악의 꽃> 재판(1861년)에 수록되어 있는데, 1857년에 간행된 <악의 꽃> 초판은 세상의 비난을 받고 벌금형에 처해진 일이 있어, 그 때의 감회를 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감(交感)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에 살아있는 기둥들은

때때로 어렴풋한 얘기들을 들려주고,

인간이 상징의 숲을 통해 그곳을 지나가면,

그 숲은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광막한

어둡고 그윽한 조화 속에서

저 멀리 어울리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합한다.

어린 아이 살결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목장처럼 푸른 향기가 있고

또 한 편엔 썩고 짙은 승리의 향기들도 있어,

호박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로 퍼져 나가서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 이 시에는 보들레르 미학의 본질적인 관념들이 내포되어 있다.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는 서로 교감하는 바, 물질 세계는 상징을 제공하며, 그것을 통해 정신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은 혼합되어 자연의 신비를 알아 내려고 서로 교감하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이 해야 할 사명은 '모호한 말들'을 분명하게 해석하는 일이다.

 

 

 

 

                                 이방인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수수께끼와 같은 사람아 말하여 보라.

너의 아버지냐, 또는 형제 자매이냐?

-내게는 부모도 형제 자매도 있지 않다.

-그러면 너의 친구냐?

-지금 너는 뜻조차 알 수 없는 어휘를 쓰고 있다.

-그러면 너의 조국이냐?

-그것이 어느 위도에 자리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이냐?

-아아, 만일 불사의 여신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도 있으련만.

-그러면 돈이냐?

-나는 그것을 가장 싫어한다. 마치 네가 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에뜨랑제여!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저 유유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몽롱한 구름을.

 

 

 

* 보들레르(Pierre Charles Baudelaire : 1821-1867)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부친이 죽고, 젊은 모친이 재혼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중학 졸업 후, 의부의 희망을 배반하고 문학을 지망, 방종한 생활에 젖었으므로 노여움을 사 1841년에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1842년에 파리에 돌아와 망부의 유산을 상속, 그 대부분을 혼혈녀 잔느 뒤발이나 문단의 보헤미안들과의 교우에 탕진했다.

1845년, 미술평론가로 등단한 보들레르는 포우에 마음이 쏠려 이 천재를 알리기 위해 프랑스어 번역을 시작했다.

1857년에 처음이요 마지막 시집인 <악의 꽃>을 출판했는데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벌금이 과해졌다.

그후로는 병과 빚에 시달리는 생활에 쫓기다가 비참히 일생을 마쳤다.

위고는 그를 "프랑스시에 새로운 공포를 도입한 시인"이라고 불렀거니와, 이것은 그의 신비적인 종교성, 통렬한 비평정신, 파리에서 쾌락을 구할 때의 그의 이상적인 후각 · 미각 · 촉각을 한 마디로 간파한 평이라 하겠다.

문학사상 보들레르의 지위는 <악의 꽃> 한 권으로 산문에서의 플로베르와 비견되며, 또 베를렌느 · 말라르메와 더불어 19세기 3대 서정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영향이 상징주의를 거쳐 현대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울

 

얕고 무거운 하늘이 뚜껑처럼

오랜 권태에 시달려 신음하는 마음을 짓누르고,

둥그런 원을 금그은 지평선으로부터

밤보다도 더 슬픈 어두운 빛을 쏟을 때.

 

땅이 지적지적한 토굴로 바뀌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와도 같이,

겁먹은 날개로 이 벽 저 벽을 치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사라질 때.

 

비가 끝없는 발을 펼치어

널따란 감옥의 쇠창살을 닮고,

창피스런 거미들의 말없는 떨거지가

우리 골 한복판에 그물을 치러 올 때,

 

종들이 난데없이 성이 나 펄쩍 뛰며

무섭게 울부짖는다 하늘을 향해,

악착스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나라 없이 떠도는 망령처럼.

 

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이, 긴 영구차가

천천히 내 넋 속을 줄지어 간다.

희망은 져서 울고, 포악한 고뇌가,

내 숙여진 머리통에 검은 기를 세운다.

 

 

 

 

                            취하라(Enivrez-vous)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짓부수고 땅으로 그대 몸을 기울게 하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쉴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그러나 다만 취하여라.

그러다가,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나, 도랑 가의 푸른 풀 위에서나, 그대의 밤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가 잠을 깨고, 취기가 벌써 줄어지고 사라져 가거들랑,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시계에,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은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그대에게 대답하리,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하여라!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