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산들바람
육체는 슬프구나, 아아 나는 모든 책을 읽었다.
도망치자! 멀리 도망치자! 나는 미지의 물거품과1)
하늘 사이에서의 새들의 도취를 느낀다!
눈에 비치는 오랜 정원도 그 아무것도
바다에 잠긴 이 마음를 붙잡지 못하리니
오오 밤이여,2) 순백색이 지키는 텅 빈 종이를
흐릿하게 비치는 내 등불의 쓸쓸한 빛도
젖 먹이는 젊은 여인도3) 나를 붙잡지 못하리.
나는 떠나리라! 돛대를 흔드는 커다란 배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서 닻을 거둬 올려라.
'권태'는 가혹스러운 희망으로 해서 번민하며4)
지금도 계속 손수건의 마지막 이별을 생각한다!
모름지기 돛대는 폭풍을 불러들여
바람에 쓰러지고 난파된 배 위에 그대로 무너지리니
배는 가라앉고, 돛대는 숨고, 돛대는 사라지고, 또한 풍요로운 섬도
하지만 나의 마음이여, 저 사공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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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과 바다로 상징되는 절대미의 세계가 예상된다.
2) 시를 쓰려고 해도 쓸 수 없는 고민의 밤을 뜻하는 것 같다.
3) 외동딸을 안고 있는 아내 마리의 모습이겠으나, 백지를 앞에 놓고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시인은 고독하다.
4) '권태'란 말은 원시에서는 대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즉, 일반적인 인생적 권태가 아니라 시쓰는 것을 고뇌로 생각하는 시인의 절망적인 권태인 것이다.
* 말라르메의 초기 시들 중에서 명작으로 알려져 있는 이 한 편은 시인의 이상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다.
백조
순결하고 생기 있어라, 더욱 아름다운 오늘이여,
사나운 날개짓으로 단번에 깨뜨려 버릴 것인가.
쌀쌀하기 그지 없는 호수의 두꺼운 얼음.
날지 못하는 날개 비치는 그 두꺼운 얼음을.
백조는 가만히 지나간 날을 생각한다.
그토록 영화롭던 지난 날의 추억이여,
지금 여기를 헤어나지 못함은 생명이 넘치는
하늘 나라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벌이런가.
이 추운 겨울날에 근심만 짙어진다.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잊은 죄로 해서
길이 지워진 고민의 멍에로부터 백조의
목을 놓아라, 땅은 그 날개를 놓지 않으리라.
그 맑은 빛을 이 곳에 맡긴 그림자의 몸이여,
세상을 멸시하던 싸늘한 꿈 속에 날며
유형의 날에 백조는 용의 옷을 입도다.
* 흔히 <백조의 소네트>라 불려지며 애송되고 있는 걸작.
그러나 백조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시를 쓰지 못하는 고뇌를 괴로와 하는 시인의 내부의 혼을 백조에다 상징화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1행의 '오늘'은 의인화된 주격으로서 그것이 '오늘의 백조'를 말한다는 것은 5행의 '지난 날의 백조'에 의해 알 수 있다.
시현(視現)
달빛이 슬피 나리더라.
꽃핀 요정들 꿈에 젖어,
어렴풋한 꽃들의 고요 속,
손끝에 활을 골라잡고
빈사의 현을 슬어내니
하얀 흐느낌이 창공의 꽃잎들 위로 번지더라.
그때는 너의 첫 입맞춤으로 축복받은 날이었지.
가슴 깊이 저미던 나의 몽상도
얌전히 취하더라, 슬픔의 향기에
꺾은 꿈이 가슴 속에
회한도 환멸도 없이 남기는 슬픔의 향기에.
내 그렇게, 해묵은 포석 위에 눈을 깔고 방황하노라면,
머리카락에 햇빛 가득담고, 거리에,
저녁 속으로 너는 웃으며 나타나더라.
내, 그래 빛의 모자를 쓴 선녀를 보는가 여겼더라.
귀염둥이 아기 시절 내 고운 잠 위로 지나가며,
언제나 반쯤 열린 그의 속에서
향기어린 별들의 하얀 꽃다발
눈 내리게 하던 옛 선녀를 보는가 여겼더라.
*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 : 1842-1898)는 20세 때에 영어를 배우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을 읽기 위해 영국에 건너가, 거기서 독일인 여교사와 결혼하였다. 이 시기에 초기의 걸작 <창공(L'Aaszur)>과 <바다의 미풍(Brisemarine)> 을 쓰고, <에로디아드>와 <목신의 오후 (L'Après-midi d'um faune)>에 착수한다.
이 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발레리의 <젊은 빠르끄>와 더불어 프랑스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순전히 유추(analogie)에 의해서 서로 암시하고 환기하다 이미지들을 쌓아가는데, 이러한 상징적 수법은 후기작품에 이를수록 더욱 강조되었고, 프랑스 시작의 정화로 해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