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백은 도사

높은바위 2005. 6. 11. 07:58

 

 일본에 백은 대사라고 생불(生佛)로 추앙받는 도인이 계셨는데 도인을 따르는 신도분의 딸이 시집도 가기 전에 애기를 배었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딸을 추궁했다.
  "어느 놈의 자식이냐?"
 위기에 몰린 딸은 그만 엉뚱한 이름을 말하였다.
  "백은 스님과......"
 아버지는 기가 찼다. 그러나 평소 깊이 존경하는 도인의 아이라니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어 딸을 용서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아들을 낳자 스님에게 갖다 드렸다.
 동네 사람들과 신도들이 정말 스님의 애기입니까? 하고 물으면 늘 웃으시며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고는 그 애기를 귀여워하시고 정성들여 키우셨다.
그렇게 되니 도인의 평(評)은 말이 아니었다.
도인이 아니라 땡초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신도들의 발길도 점차 드물어져 갔다.


 그러나 백은 대사는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어렵게 탁발하여 애기를 잘 키웠는데, 하루는 젊은 남녀가 찾아와 엎드려 절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쏟는다.
  "실은 저희들 사이에서 생긴 애기인데도 그 사실이 밝혀지면 아버님 손에 당장 죽음을 면치 못할 것 같아 스님의 애기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한 몸의 위기는 면했지만 스님의 인품에 너무 큰 상처를 입혔으니 이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그때 스님은 애기를 내어 주시며 별말없이 빙그레 웃으셨다고 한다.


 우리들이 그런 입장에 처했을 때 그 도인처럼 빙그레 웃을 수 있을까?
너무나 부러운 일이다.

아상(我相)이 없는 이는 '나'란 것이 없어 창피를 당할 자리가 없다.
 또 한편으로 볼 때 그런 봉변은 전생(前生)에 그런 인식이 있으면 그 인식을 가지고 이생에도 당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런 업장이 있기에 당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변명한들 믿어 주는 사람 없을 때에는 올라오는 마음 바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