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아 모여라,
어디를 다니든지 간에.
그리고 변화의 물결이
다가옴을 보여주자.
그 물결이 뼛속 시리게
젖어들 것임을 받아들이자.
그대의 세월이
당신 자신에게 소중하다면
흐름에 발맞추자.
아니면 돌처럼 가라앉을지니.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펜으로 예언을 말하는
작가와 논자들이여 오라
눈을 크게 뜨라,
변화의 순간은 다시 다가오지 않으니.
수레바퀴는 아직 돌고 있으니
섣불리 논하지 말고,
갓 싹튼 변화를
섣불리 규정하지 말지어다.
지금의 패자들은
훗날 승자가 되리니.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아,
사람들의 부름을 경청하라.
문 앞을 가로막지 말고
회관을 봉쇄하지 말라.
상처 입는 것은
문을 걸어 잠그는 이들이 되리라.
바깥세상의 싸움은
점점 가열되고 있으매,
머지않아 그대들의 창문을 흔들고 벽을 두들기리니.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온누리의 어머니 아버지들도
함께하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지 말길.
당신의 아들딸들은
당신의 통제를 넘어서있으니.
그대들의 구 노선은
빠르게 낡아간다.
거들어주지 않을 거라면
가로막지는 말아 주기를.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한계선이 그어지고,
저주가 퍼부어지고 있다.
지금은 더딘 변화는
훗날 가속하리라.
지금의 현재는
훗날 과거가 되리라,
세상의 이치는
빠르게 변해가니.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말단이 되리라.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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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s They Are a-Changin'
Come gather ’round people
Wherever you roam
And admit that the waters
Around you have grown
And accept it that soon
You’ll be drenched to the bone
If your time to you is worth savin’
Then you better start swimmin’
or you’ll sink like a stone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Come writers and critics
Who prophesize with your pen
And keep your eyes wide
The chance won’t come again
And don’t speak too soon
For the wheel’s still in spin
And there’s no tellin’ who that it’s namin’
For the loser now will be later to win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Come senators, congressmen
Please heed the call
Don’t stand in the doorway
Don’t block up the hall
For he that gets hurt
Will be he who has stalled
There’s a battle outside and it is ragin’
It’ll soon shake your windows and rattle your walls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Come mothers and fathers
Throughout the land
And don’t criticize
What you can’t underst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Are beyond your command
Your old road is rapidly agin’
Please get out of the new one
if you can’t lend your hand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The line it is drawn
The curse it is cast
The slow one now
Will later be fast
As the present now
Will later be past
The order is rapidly fadin’
And the first one now will later be last
For the times they are a-cha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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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딜런(Bob Dylan, 출생명 : 로버트 앨런 짐머맨(Robert Allen Zimmerman), 1941년 5월 24일 ~ )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가, 화가이다.
밥 딜런은 1941년 미국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에게서 영향을 받아 본인의 이름에도 ‘딜런’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명했다.
뮤지션으로서 살아온 밥 딜런이지만 그에겐 시인의 유전자가 더 많았던 셈이다.
1962년 앨범으로 데뷔한 그는 당시 활발하던 사회저항운동에 있어 상징적인 뮤지션이 됐다.
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 등 혼란기에 빠진 미국 사회를 웅얼거리듯 읊조리는 창법으로 고발한 그의 음악은, 1969년 8월 미국의 젊은이들이 뉴욕 베델공원에서 사흘간 모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라이크 어 롤링 스톤즈’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 중얼거리는 듯한 음성, 리듬도 박자도 제멋대로라 기존 가수의 가창력과는 다른 방향을 향했던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
데뷔 이후 그래미상만 11회 수상했으며, 영화 주제곡으로 골든글로브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다.
2008년에는 퓰리처상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세계 이슈의 중심에 선 밥 딜런은 수상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림원의 발표 이후 라스베이거스 코즈모폴리턴 호텔에서 열린 전미 투어 콘서트에서 밥 딜런은 관객들의 “노벨상 수상자”라는 환호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노래에만 집중했다.
노벨상 발표 직후 이 공연은 매진이 됐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그의 냉랭한 반응에 수상 거부설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밥 딜런은 2010년 이루어진 한국 공연에서도 아무런 멘트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공연장에서 말을 아끼는 편이다.
뮤지션으로서, 시인으로서 그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인기와 달리 그의 실제 행동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아웃사이더적인 면모가 많았다.
독단적이고 개인적인 행동들 때문에 인생사에 곡절이 많은 편이다.
이혼도 여러 번 했고, 마약을 하는가 하면 주변 사람들과 불화도 심했다.
그가 비틀스에게 마약을 가르쳐준 일은 유명한 일화다.
사생활 면에서도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다.
심한 바람둥이였던 밥 딜런은 여성편력이 심해서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돈을 대주느라 열심히 돈 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대표적인 여자친구는 뮤지션 조안 바에즈.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1960년대 저항의 아이콘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광장의 노래로 함께했다.
딜런이 무명 작곡가에 불과하던 시절, 이미 신비한 미성으로 포크 음악의 신예로 떠올랐던 바에즈는 딜런을 자신의 무대에 내세웠다.
그때 바에즈는 딜런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가 바에즈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민권, 반전을 상징하는 가수가 되었다.
밥 딜런은 존 바에즈와 헤어진 이후 사라 라운즈 클레어와 결혼했다.
이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여러 여자들을 사귀다가 늘 불화로 끝을 맺었다.
밥 딜런은 엄청난 금액의 위자료와 소송비용 등으로 재산을 탕진한 뒤 순회공연에 나서서 만회하기를 반복했다.
첫째 부인에게서 얻은 네 번째 자식인 아들 제이콥 딜런은 미국의 유명 록밴드 ‘월 플라워스’의 리더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후광 없이 비교적 성공한 편이다.
아버지 밥 딜런이 그래미 앨범상을 받을 때 월플라워스 역시 록 부문 그래미상을 받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표현하면서 극찬했다.
“그의 음악은 가장 위대한 작품들의 샘플집과도 같다. 음악계에 몸담아온 54년 동안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해 왔다”고도 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밥 딜런의 1966년 앨범 등을 예로 들면서 노래 가사의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도 내렸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과 운율의 조합으로 충분히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는 말이다.
시보다 더 시적인 가사를 쓰는 것으로 알려진 밥 딜런은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인권운동과 흑인차별 등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뜨거울 때 수많은 명곡을 남기면서 청춘의 우상이자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가사에는 정치와 사회,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내용이 시적으로 담겨 있었다.
덕분에 미국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반전의 메시지를 전할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한 뮤지션이었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린 그는 청바지, 통기타와 함께 우리나라 청춘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밥 딜런의 가사는 종종 난해한 현대시에 비유되어 왔다.
미국의 여러 대학 영문과에서는 그의 시를 분석하는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대중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긴 하지만 밥 딜런의 문학성은 그 어떤 작가나 시인, 극작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상을 두고 각계의 반응이 뜨겁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밥 딜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라면서 그의 수상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