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높은바위 2023. 3. 9. 08:01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기를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따세요.

시간은 쉼 없이 달아나고

오늘 미소 짓고 있는 이 꽃도

내일이면 죽어버린다오.

 

하늘의 찬란한 등불인 태양도

높이 솟아오르면 오를수록

그 경주는 곧 끝나게 되고

얼마 안 가서 해가 진다오.

 

인생은 청춘과 피가 뜨거운

처음 시절이 최고라오.

그 시절 지나면 점점 더 나쁜

시간들이 뒤따를 것이니까요.

 

그러니 수줍어 말고 그대의 시간을 활용하세요.

그리고 할 수 있을 때에 결혼하세요.

가장 좋은 시절을 놓치고 나면

영원히 늦을지도 모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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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The glorious lamp of heaven, the sun,

The higher he’s a-getting,

The sooner will his race be run,

And nearer he’s to setting.

 

That age is best which is the first,

When youth and blood are warmer;

But being spent, the worse, and worst

Times still succeed the former.

 

Then be not coy, but use your time;

And while ye may, go marry:

For having lost but once your prime,

You may for ever t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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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라는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즈(Robin Williams)가 연기한 존 키팅(John Keating) 선생이 보수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교육을 하는 미국의 명문 학교에 발령을 받게 된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말이다.

"카르페 디엠"은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의 라틴어로서, 영시에서는 주로 수줍은 처녀에게 아직 한창일 때 즐기라는 유혹적인 모티프로 많이 쓰인다.

 

이 시는 겉으로는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니 현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일반적인 충고로 읽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은 명문대학 합격, 출세 등을 위해서 현재의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카르페 디엠"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의 민요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가 금방 떠오른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따라는 말이나, 늙어지면 못 노나니 젊어서 놀자는 말은 같은 맥락이니까.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우리나라 민요와 헤릭의 시는 아주 착착 장단이 맞아떨어진다.

'오늘 핀 꽃 내일 지고,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달도 차면 기운다.

세월 가면 백발 오고 못 면할 쏜 죽음'이라고 우리나라의 단가인 "백발가"도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고 절망에 빠져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 민요에서도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라고 봄꽃을 즐기며 놀자고 신명 나게 노래한다. 

"화란춘성 만화방창"(花爛春城 萬和方暢)은 "꽃이 봄을 만나 활짝 피었으니 만사가 모두 평화롭다"는 뜻으로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어울리는 이상을 노래한 것이다.

 

세상의 허무함이나 인생살이의 어려움에 인상 쓰고 한숨만 쉬며 살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아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소중한 오늘이 있으니까.

오늘은 어제의 사형수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소중하고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충만한 오늘을 아낌없이 사는 것만이 바로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는 길일 터이다.

 

로버트 헤릭의 시는 "카르페 디엠" 모티프를 세련되게 사용하며, 처녀들에게 더 늙어지기 전에 결혼하라고 권유하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좋은 시절을 놓치고 나면 영원히 늦을지도 모를 테니까요."라고 말하며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헤릭은 2,500여 편의 시를 썼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그의 주요 작품인 헤스페리데스에 나온다. 

헤스페리데스는 또한 1648년에 처음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영적 저작인 훨씬 더 짧은 노블 넘버도 포함하고 있다. 

그는 그의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애정결핍과 여성의 몸을 자주 언급하였다. 

그의 후기 시는 보다 영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짧은 시적 표현들 중에는 475번 "Thus I / 지나가다 / 그리고 죽다, 하나로서 / Unknown / And gone"과 같은 독특한 단량계가 있다.

 

헤릭은 그의 시집 "그의 책의 논쟁"의 첫머리에 인쇄한 시에서 주제물을 제시한다. 

그는 영국의 시골 생활과 그 계절, 마을 풍습, 다양한 숙녀와 친구들에게 바치는 찬사시, 고전적인 글에서 따온 주제,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견고한 토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받침으로 삼았다. 

헤릭의 스타일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의식적인 지식을 가지고 일하는 훌륭한 예술가, 그가 살고 움직이고 사랑하는 젊은 시절의 영국인, 명확하고 단순한 사상표현을 가진 그의 연설의 직설성은 그 구절의 엄격하고 순수한 감각으로 그를 서정적인 시인으로 일 순위에 분명하게 배치한다"라고 말해 왔다.

 

헤릭은 결혼하지 않았고 그의 사랑 시들 중 어떤 것도 어떤 한 여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관능의 풍부함과 삶의 다양성을 사랑했다. 

이는 '체리리리페', '무질서한 딜라이트', '우폰 줄리아의 옷' 같은 시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

 

헤릭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생은 짧고 세상은 아름답고 사랑은 화려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짧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이 메시지는 겉보기에 친절하고 유쾌한 성격의 따뜻함과 활기가 넘치는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기를', '수선화에게', '꽃에게', '코리나의 가는 마잉' 등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그의 시는 출판상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도네나 앤드류 마벨 같은 형이상학적 시인들의 복잡성에 동조하는 관객들에게는 벤 존슨, 로마의 고전 작가, 엘리자베스 시대 말기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이 구식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초에 재발견되었고 그 이후로 정기적으로 인쇄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스윈번은 헤릭을 "영국 인종에서 태어난 가장 위대한 노래 작가"라고 묘사했다. 

그가 고전적인 암시와 이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릭의 시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의 시보다 현대 독자들에게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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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 1591년 ~ 1674년) 영국 런던 출생의 시인이다.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후 런던에서 시인 B. 존슨의 문학서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사상적으로는 왕당파 국교회 우파, 문학적으로는 고전문학 특히 호라티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라틴문학에 뜻을 두었다.

1629년부터 데번셔에서 목사생활을 하였으나, 47년 청교도에 의해 쫓겨났다가 62년 왕정복고로 복직되었다.

B. 존슨의 계보를 이은 왕당파 시인으로, 격조 있고 세련된 목가적 서정시를 많이 발표하였다.

주요 저서로 <헤스페리데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