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영국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높은바위 2023. 3. 8. 05:54

 

수선화에게

 

아름다운 수선화여, 슬프게도

너희는 서둘러 너무 일찍 떠나는구나,

아침 일찍 떠오른 태양도 아직

정오의 한낮에 도달하지 못하였는데.

머물러라, 머물러,

빠르게 지나가는 한낮이

흘러

다만 저녁 예배 때까지만이라도,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우리

너희와 같이 가리라.

우리 또한 너희처럼 머무를 시간이 짧으니,

우리의 봄도 그만큼 짧고,

그만큼 빨리 자라 저무네,

너희처럼, 또는 다른 모든 것처럼.

우리도 죽네

너희 시간이 끝나가듯, 그리고

말라 없어지듯

여름날 비처럼

또는 진주 같은 아침 이슬처럼,

다시 볼 수 없이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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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affodils

Fair Daffodils, we weep to see

You haste away so soon;

As yet the early-rising sun

Has not attain'd his noon.

Stay, stay,

Until the hasting day

Has run

But to the even-song;

And, having pray'd together, we

Will go with you along.

We have short time to stay, as you,

We have as short a spring;

As quick a growth to meet decay,

As you, or anything.

We die

As your hours do, and dry

Away,

Like to the summer's rain;

Or as the pearls of morning's dew,

Ne'er to be foun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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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헤릭의 이 시는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면서, 너무 빨리 시들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수선화처럼 사람의 삶도 짧고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관조하고 있다.

인생의 봄도 수선화처럼 아름답지만 짧다.

삶은 진주 같은 아침 이슬처럼 황홀하지만, 여름날 비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만다.

여기 이 땅에 머무는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허비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

오늘 웃는 이 꽃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로버트 헤릭의 다른 시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기를"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 / seize the day 오늘 또는 현재를 잡으라)의 또 다른 버전이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아마 교회 마당에 피어 있는 수선화가 활짝 핀 후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아침 일찍 떠오른 태양은 젊음을, 정오의 한낮은 젊음의 한창때를 상징한다.

'저녁 예배' (evensong)는 인생의 황혼 무렵을 상징한다.

'기도'는 수선화 꽃이 시들어 힘없이 고개 떨구는 모습과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기도를 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가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 인간의 삶이 짧은 것이 수선화에 비유되었다.

수선화가 빨리 시들 듯이 인간의 삶도 여름날 비처럼, 아침 이슬처럼 말라버리고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내년 봄에 수선화가 다시 피거나, 현세에서 바른 삶을 살고 내세의 축복받은 삶을 얻으라는 신앙적 메시지는 이 시에 나타나 있지 않다.

헤릭이 성직자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한편으론 다른 시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기를"처럼 적극적으로 '카르페 디엠'을 강요하고 있지도 않다.

이 시에서는 다만 '인생은 수선화처럼 아름답고, 삶은 짧다'라는 사실 그 자체만 제시하고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는 읽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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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1591년 8월 24일 ~ 1674년 10월 15일)은 17세기 영국의 서정시인이자 성직자였다. 

그는 시집인 헤리페리데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카페 디엠시 "처녀들에게,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기를"이 포함되어 있으며, 첫 번째 줄에는 "예,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캐서"가 있다.

 

런던의 프라이스사이드에서 태어난 로버트 헤릭은 줄리아 스톤과 니콜라스 헤릭의 일곱 번째 아이이자 네 번째 아들이었다.

그는 16세기 중반 헨리 8세가 해체한 후 그레이프라이스 애버리가 서 있던 땅을 매입한 레스터의 번영하는 하원의원 로버트 헤릭(혹은 헤이릭)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지어졌다. 

니콜라스 헤릭은 로버트가 한 살이던 1592년 11월 4층 창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이것이 자살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헤릭이 웨스트민스터에서 교육을 받은 전통은 그의 시 "Tears to Timesis"에서 "믿고 있는 웨스트민스터"라는 말을 바탕으로 하지만 암시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도시에 있다. 

그는 삼촌의 자녀들처럼 상인 테이어스 학교에 다녔을 가능성이 더 높다. 

1607년 그는 다른 삼촌인 윌리엄 헤릭 경의 도제가 되었다.

윌리엄 헤릭은 금장공이자 왕의 보석상이었다. 

22세의 헤릭이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한 지 6년 만에 수습생이 끝났다. 

그는 후에 트리니트 홀로 이주하여 1617년에 졸업했다. 

헤릭은 '벤의 아들들'의 일원이 되었는데, 이 그룹은 벤 존슨의 작품에 대한 찬사를 중심으로 그가 적어도 다섯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헤릭은 1623년에 영국교회에 서품 되었고 1629년에 데본셔의 딘 프리어의 대리인이 되었다.

 

1647년 영국 남북전쟁의 여파로 헤릭은 엄숙한 리그와 코버넌트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의 대리직에서 쫓겨났다.

그는 웨스트민스터에 살기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고 친구들과 가족의 자선에 의존했다. 

그는 그의 서정시를 출판하기 위해 얼마간 준비했고 1648년 영국 왕자에게 헌납하여 헤스페리데스라는 제목의 시집을 인쇄했다.

 

1660년 찰스 2세가 왕위에 복위되자 헤릭은 자신의 생업 회복을 청원했다. 

그는 남북전쟁 전에 찰스 2세와 그의 동생 제임스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를 써서 인기를 얻었다. 

헤릭은 1662년 여름에 다시 딘 프라이어의 대리인이 되었고, 1674년 10월 8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의 사망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0월 15일에 묻혔다.

 

헤릭은 평생 총각이었다. 

그가 그의 시에서 이름 짓는 많은 여성들은 허구적인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