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라마르틴

높은바위 2015. 1. 21. 18:36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 : 1790-1869)은 부르고뉴의 마콩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애정어린 보살핌으로 행복한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다.

리용과 베레에서 학교를 마친 뒤 1811년 이탈리아에 여행하여 나폴리의 아가씨 안토니에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1816년 엑스 레 방 온천장에 가서 '검은 머리와 아름다운 눈을 지닌' 여성 줄리 샤를르부인을 알게 되었다.

그는 부인에게 깊은 애정을 품게 되었으며 다음 해에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부인은 폐병으로 중태에 빠져 있었고, 그해 겨울에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줄리 샤를르 부인에 대한 정열적인 그리움과 씻을 길 없는 우수는 라마르틴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그는 그 감정을 <호수>

<고독> <골짜기> <가을> <저녁> 등 24편의 시에 노래하였다.

그것이 처녀 시집인 <명상시집>(1820)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낭만적인 가락을 사용하여 오래 잊혀져 있던 서정을 프랑스시에다 다시금 불러 들였고, 낭만주의의 막이 오르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명상시집>의 대성공에 확신을 얻은 그는 1820년부터 10년 동안에 걸친 이탈리아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보내면서 시작생활을 계속하여 <신 명상시집>(1823) <소크라테스의 죽음>(1823) <종교시집>(1830)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최후의 서정 시집인 <정관(靜觀)시집>(1839)을 출판한 뒤에는 정치에 전념하여 1848년의 2월 혁명에서는 임시 정부의 외무장관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뒤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 나폴레옹에게 크게 패하여 1851년의 제2제정의 출현이 그의 정치 생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만년에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 '펜의 노예'가 되어 원고를 쓰게 되었고, 수많은 산문의 명작을 창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피곤에 지쳐 실의 속에 이 세상을 떠났다.

1816년 10월, 사보와의 온천지 엑스 레 방에서 요양하고 있던 26세의 시인은 늙은 과학자의 젊은 부인인 줄리 샤를르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다음 해 파리에서 다시 만났으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고, 10월에 시인이 '엘비르'라고 부르던 그 여자는 병사하고 만다.

젊은 날의 그 덧없는 사랑의 회상을 자연의 정감과 무한에 대한 기원 속에 노래한 <명상시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이 한 편이다.

호수는 상베리에서 가까운 르브루제 호수이다.

이 시는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한 편으로 애송되고 있다.

 

 

 

                      호수

 

 

이렇게 늘 새로운 기슭으로 밀리며

영원한 밤 속에 실려 가 돌아오지 못하고

우리, 단 하루라도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닻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오오 호수여! 세월은 한 해의 운행조차 못했는데

그녀가 다시 보아야만 할 정다운 이 물가에

보라, 그녀가 전에 앉아 있던 이 돌 위에

나 홀로 앉아 있노라!

 

그때 너는 바위 밑에서 흐느끼었고

그때도 너는 바위에 부딪혀 갈라지면서

그때도 너는 물거품을 내던지고 있었다.

사랑스런 그녀의 발에.

 

그 날 저녁의 일을 그대 기억하는가.

우리 말없이 배를 저을 때 들리는 것이란

이 세상에서 오직 조화있게 물결 가르는

우리의 노 젓는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이 세상의 소리 같지 않은 목소리가

먼 둔덕 기슭으로부터 울려 왔느니

물결은 갑자기 고요해지고 그윽한 소리는

내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오 시간이여 운행을 멈추고

너 행복한 시절이여 흐름을 멈추라!

우리네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로

덧없는 기쁨이나마 맛보게 하라.

 

수많은 불행한 일들이 너를 기다리느니

시간이여 그들을 위해 빨리 가거라.

그들의 불행도 시간과 함께 앗아 가고

행복한 사람일랑 잊어 버려 다오."

 

이 잠시의 유예나마 바람은 쓸데 없는 일

시간은 나를 비껴 자꾸만 달아나고

나는 밤을 향해 "천천히 밝아라" 말했으나

새벽은 서둘러 와 밤을 쫓는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덧없는 시간이니

이 짧은 시간을 어서 즐겨야지.

사람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에겐 기슭이 없느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사라지네!"

 

시샘 많은 시간이여, 사랑겨운 이 순간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이 도취의 순간도

저 불행의 날처럼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리 날아 가야만 하는 것인가?

 

뭐! 도취의 흔적조차 남겨 둘 수 없다고?

뭐, 영원히 갔어? 뭐라고! 사라졌다고?

도취를 주었던 이 시간, 또 지우는 이 시간이

다시는 돌려지지 않을 것인가?

 

영원, 허무, 과거, 또한 어두운 심연이여,

너희가 삼킨 날들을 어찌하려 하는가?

말하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지상의 도취를

언제면 우리에게 돌려 주려나?

 

오, 호수, 말없는 바위, 동굴, 검은 숲이여!

때에 따라 변치 않고 다시 젊어지는 그대들이여,

이 밤을 간직하라,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추억만이라도 간직해 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그대의 휴식이든 폭풍속이든

또한 그대의 미소짓는 언덕의 모습에서든

검은 전나무나 또한 바위 위에 뾰죽 솟은

이 거치른 바위 속에서든 간에!

 

살랑살랑 부는 산들바람 속에서든지

메아리치는 호숫가의 그 노래 속에서든지

그대 수면을 부드러운 빛에서 희게 물들이는

은빛 이마의 별 속에서든지!

 

흐느끼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호수의 향긋하고 가벼운 향기

듣고 보고 숨쉬는 모든 것이 속삭이리니

"그들은 서로 사랑하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