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大田)부근에서 미 딘소장(少將) 포로로 잡히다
인민군은
오산, 평택, 조치원을 거쳐
대전을 우회하여
금산간의 도로와 대전 대구간의 도로를
차단하고 대전을 봉쇄했다.
부대들 간의 통신도
지휘체제도 잃은 미군은(1950.7.19.오후6시)
저항을 멈추고 총 퇴각해야 했다.
싸움다운 싸움 한 번 못하고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남쪽으로 후퇴하던 미군은
인민군 매복에 걸려 풍지박산 되었다
이로 인해
미24사단 병력 4,000여명중
포로 1,150명에 이르렀고,
사단장 딘 소장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패잔병이 되어 혼자서 적진을 방황해야 했다.
빛나는 별 두개를
양어깨에 붙이고도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인지도 모르고
삶과 죽음의 목마른 논두렁에서
미끄러워 넘어지고 배고파 넘어지며 지냈다.
8월 25일 어느 농민의 신고로
딘 少將은 인민군의 포로가 되었다.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