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과 그 비극의 역사/아버지의 城

대전(大田)부근에서 미 딘소장(少將) 포로로 잡히다

높은바위 2019. 6. 27. 18:36

 

 

 

대전(大田)부근에서 미 딘소장(少將) 포로로 잡히다

 

 

인민군은

오산, 평택, 조치원을 거쳐

대전을 우회하여

금산간의 도로와 대전 대구간의 도로를

차단하고 대전을 봉쇄했다.

 

부대들 간의 통신도

지휘체제도 잃은 미군은(1950.7.19.오후6)

저항을 멈추고 총 퇴각해야 했다.

 

싸움다운 싸움 한 번 못하고

장갑차의 호위를 받으며

남쪽으로 후퇴하던 미군은

인민군 매복에 걸려 풍지박산 되었다

이로 인해

24단 병력 4,000여명중

포로 1,150명에 이르렀고,

  

사단장 딘 소장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패잔병이 되어 혼자서 적진을 방황해야 했다.

 

빛나는 별 두개를

양어깨에 붙이고도

어디가 남쪽이고 어디가 북쪽인지도 모르고

삶과 죽음의 목마른 논두렁에서

미끄러워 넘어지고 배고파 넘어지며 지냈다.

825일 어느 농민의 신고로

少將은 인민군의 포로가 되었다.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