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최고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고려의 절창(絶唱) 12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정지상은 당시 개경 문단을 주름잡던 김부식과 역사적으로 최대의 라이벌 관계에 놓인다.
역사가이며 유학자였고, 뛰어난 문재를 발휘했던 김부식이 개경 문단을 독식하던 시절, 점차 정지상의 이름이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정지상은 뛰어난 문재를 발휘하며 개경 문단의 중심이 되었고, 그의 시 「송인」이 개경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개경 문단에서 쌍벽을 이루며 활동하게 된 정지상과 김부식은 조정에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정지상은 특히 오언절구를 잘 지었다.
하루는 그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절간의 염불 소리 그치니
새벽 하늘빛 맑은 유리로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풍경을 읊은 이 시를 전해 들은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이 구절을 빌려주면, 나머지 부분은 자신이 채우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지상은 김부식의 제의를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당시 김부식은 명문귀족 출신으로 중견 관리였지만, 정지상은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초급 관료였으니 김부식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이 사건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면 아래로 잠시 내려앉았지만, 정지상(鄭知常)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에 연루되어 결국 김부식(金富軾)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맞게 된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 시를 지었다.
"버들 빛은 천 개 실이 온통 푸르고, 복사꽃은 만점이나 붉게 피었네(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득의의 구절을 얻어 흐뭇해하는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후려갈겼다.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이라니, 누가 세어 보았더냐?
'버들빛은 실실이 온통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게 피었네(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고 해야지."
과연 한 글자를 고치고 나니, 물오른 봄날의 버들가지와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가 '천(千)'과 '만(萬)'으로 한정 지었을 때보다 더 생생해졌다.
이렇게 한 글자를 지적하여 시의 차원을 현격하게 높여주는 것을 '일자사(一字師)'라고 한다.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그 후 김부식이 어떤 절 뒷간에서 일을 보는데, 귀신이 된 정지상이 뒤에서 음낭을 쥐며 묻기를 "술도 안 마시고 왜 얼굴이 붉으냐?"라고 하였다.
김부식이 대답하기를 "저 건너 언덕의 단풍이 얼굴을 비춰 붉다"라고 하였다.
다시 정지상이 음낭을 단단히 쥐며 "무슨 가죽 주머니냐?" 하고 물었다.
김부식은 "네 아비의 불알이다"라고 답하였는데 전혀 낯빛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지상이 음낭을 더 힘껏 쥐어 김부식은 마침내 뒷간에서 죽었다.
김부식의 시에 맺힌 원한 때문에 정지상이 죽임을 당했지만, 죽은 정지상이 산 김부식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설이다.
비운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지상은 이렇게 허망하게 한 생애를 마감했고, 그의 문학적 라이벌이었던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평정한 이후 『삼국사기』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