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田禹治, 조선 중종 ~ 명종, 생몰년 미상)는 조선 시대 각종 기록에서 등장하는 기인으로 실존인물이자, 고전 소설의 주인공이다.
선도(仙道)로서 초자연적 일화를 많이 남긴 전우치(田禹治)는, 담양전씨(潭陽田氏)의 후손이다.
호는 우사(羽士)이며, 도술을 부리는 조선시대 도사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그는 선술(仙術)에 의한 기담(寄談)을 많이 남긴 전설 속의 인물처럼 돼버렸다.
《오산세림(五山說林)》, 《조야집요(朝野輯要)》에 그의 환상적 선술이 마치 사실인양 기록되고 있다.
이를테면 송인수(宋麟壽), 신광한(申光漢) 등과 노는 자리에서, 그가 밥을 토하니까 밥티가 나비들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는 둥.
―좌중에서 천상에 있는 천도(天桃)를 따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전우치는 쇠파리 수백 마리를 잡아 하늘로 내어 던지니까 구름 속으로 사라지더니, 하늘에서 천승(天繩)이 한가닥 내려왔다.
한 동자에게 이 줄을 타고 오르면 천도가 있으니 따오라 시켰다.
좌중 동자가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올려 보고 있자, 벽도엽(碧桃葉)과 그 열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먹어보니 감액(甘液)이 더없이 맛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붉은 피가 떨어지는지라, 전우치가 놀라 이것은 천도를 지키는 자가 천제(天帝)에게 일러, 이 아이를 죽인 것이라고.
조금 있다가 그 아이의 팔, 다리, 몸뚱이, 머리가 찢긴 채 떨어졌다.
전우치는 이 촌단 된 유체를 주워 이으니, 동자가 예전대로 살아났다.
좌객이 크게 웃었다. 《조야집요(朝野輯要)》
사람이 초자연적인 어떤 가능성을 믿으려는 성향은, 그것이 비록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고하게 안 이후에도 사라지진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태초에의 향수 같은 것이 잠재의식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기에 고금을 통하여 이 초자연과 직결된 무의식행사는 겉으로 나타나는 양상만 달랐을 뿐 항존해온 것이다.
어느 역사적 시간 동안 한국서민들은 그런 무의식 작용을 선도(仙道)에다 해소시켰던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도교(道敎)는 그 교리(敎理)로서 보다 이 초자연의 공감성 속에 정착하였고, 도교의 도인들은 그 공감에서 자신을 초연화하여, 자신을 속세에서 소외시켜 그 공감 속에 구제했던 것이다.
즉, 그 도인이 초자연적인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그런 도인을 대상으로 하여 백성들의 그 같은 무의식 성향이 해소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 대상의 극치요, 한 표현방식이 도인 전우치로 하여금 대행된 것이다.
이 같은 태고에의 향수의 무의식적 방황이 대상을 잡으면, 대개 혹세무민(惑世誣民)으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도참으로 야합하여, 정권교체나 권력투쟁의 파워로 진전하고 또 종교와 야합하여 사교 또는 신흥종교로서 파워를 형성하고, 동학 같은 시대적 이데올로기(Ideologie)와 야합하여 동학혁명이나 민족운동으로도 발전하기도 하였다.
전우치도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처형을 받았다.
전우치의 죽음은 태고에의 향수의 무의식적 투사(投射)가 살인을 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투사체를 잊어버린 무의식의 집체는 계속 그의 신비력을 포기하진 않았다.
―신천옥(信川獄)에서 죽어 수령이 가매장시켰는데, 가족이 이장(移葬)하고자 무덤을 파고 관(棺) 뚜껑을 열어보니 시체는 없고 빈관이었다.
선군(先君)이 말하길, 어느 하루 전우치가 찾아와서 두공부시집(杜工部詩集) 한 질을 빌려갔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책을 빌려간 때는, 이미 전우치가 죽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 한다. 《오산세림(五山說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