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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 style="color: #000000;">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 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오늘도 눈이 조금 내려 쌓이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오늘도 바람마저 불어 지나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예를 들자면 여우 가죽을 댄 옷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눈이 조금 내려서 오그라들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아무런 희망 없이 바람도 없이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은권태로움 속에서 죽음 꿈꾸지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아프고 아프도록 두려움 들고지저분해져 버린 나의 슬픔에딱히 한 일도 없이 하루 저물지……  * * * * * * * * * * * * * * *  * 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1907년 4월 29일 ~ 1937년 10월 22일)는 카시무라 주야(柏村 ..

수제비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별식으로 감자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우리 속담에 '수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한다'라는 말이 있다." '수제비'는 밀가루를 묽게 반죽하여 끓는 장국에 조금씩 떼어 넣고 익힌 음식이다.서민 음식으로 잘 알려진 수제비는 고려시대에 조금의 기록만 있을 뿐, 그 기록이 적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고증하기 어렵다고 한다.다만 그 유래를 중국에서 530~550년 사이에 제작된 '제민요술' 속에, '박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걸로 일부만 확인할 수 있다.수제비가 서민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엔 밀의 생산이 많지 않았던 걸로 봤을 때, 귀한 음식으로 취급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름이 '수제비'가 된 데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먹는다..

파장떨이

장(場)의 끝무렵. 또는 끝내기 위해 싸구려로 물건을 넘기는 일.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고은, '선제리 아낙네들', "만인보· 1", p. 148)  이완용의 적수 송병준은 1억 원 내야 한다고 했는데합방 공로 차지하려고그 1억 원을 3천만 원으로 파장떨이 해버렸다 (고은, '혈의 루', "만인보· 1", p. 42)

왕의 호칭

고려 및 조선시대 한반도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왕의 호칭에 관해, 어떤 기준으로 ‘조(祖)’, ‘종(宗)’, ‘군(君)’을 쓰느냐는 것이다. '군'에 대해서는 그래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으로 폐위된 왕들은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왕자 시절 호칭으로 불린다. '조'와 '종'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의 왕 중 '조'의 칭호를 쓰는 왕 대부분은 후대에 추숭 되는 과정에서 '조'를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왕의 호칭은 사후에 종묘를 신주에 모시는 과정에서 왕의 업적을 한 글자로 표현하고, '조'와 '종'을 붙이고 묘호(廟號)라 하였다. 예를 들어 학문에 뛰어났다는 뜻의 문종(文宗), 어질었다는 뜻의 인종(仁宗), 효..

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하나의 동화 가을밤은 아득히 저편에 흐르고자갈뿐인 강변이 있어거기에 햇살은 사각사각사각사각 비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해라고는 해도 마치 규석 따위와 같아서지극히 미세한 개체의 분말과 같아서그래서 더더욱 사각사각하고어렴풋한 소리를 내고도 있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자갈 위에 바로 지금 나비 하나 날아 앉아아스라한 그리고 또렷한그림자를 떨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이윽고 그 나비가 보이지 않게 되자 어느샌가지금까지 흐르지도 않았던 강물바닥에 물은사각사각 사각사각하고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 * * * * * * * * * * * * * * 나카하라 추야(中原 中也, Nakahara Chūya, 1907년 4월 29일 ~ 1937년 10월 22일)는 카시무라 주야(柏村 中也, Kashimura Chū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