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韓末)에 되소금[胡鹽:호염]이라 하여, 청나라에서 밀수되는 식염이 나라안에 꽤 나돌았다.재래염보다 한결 짜고 아울러 부피가 작기 때문에 소금이 소중한 산골사람들에게는 십상이어서 소금장수들은 살 판이 난 것이다. 그런데 춘천서 양구로 가는 소금길만은 이 되소금장수가 오갈 수 없었다.소양강 건너 마작산(麻作山) 줄기의 뜨내리재 부침치(浮沈峙)를 넘어야 하는데, 이 되소금 짐을 지고 넘어가노라면, 뜨내리재가 떴다 내렸다 들쑥날쑥하여 소금짐을 뒤엎어놓고 만다고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만약 호인(胡人)이 이 재를 넘는다면, 그 뜨내리의 조화 때문에, 머리가 돌아 발광하고 만다고도 구전되어 왔다. 그러기에 되소금이건 청인이건 호(胡)와 관계된 것이면 이 가까운 뜨내리재로 가질 못하고 두곱이나 더 먼 낭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