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9. 봄은 고양이로다

높은바위 2005. 6. 2. 05:58
 

9. 봄은 고양이로다

                          이 장 희(1900-1929)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가 뛰놀아라

                      1924년. 금성



* 이 시는 고양이를 통해 봄의 모습과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노래한 시이다. 개인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1930년대의 주지시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 정서적 바탕을 이루는 것은 낭만시의 정조이다. 이 시는 형시상 1,2연과 3,4연이 각각 유사한 구문으로 되어 있으며, 음수율도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이미지에 있어서 각각 대조적이다. 1,3연은 곱고 부드러운 여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정태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2,4연은 다소 거칠고 과격한 동태적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시는 봄의 정서를 고양이의 특징적 모습과 결부시킨 점이 돋보인다. 따라서 이 시는 사상성보다는 사물의 감각적 모습을 뚜렷이 형상화한 즉물적 경향이 강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