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冠帽峰 아랫마을
유 정
------ 어머니
먼 관모봉 산마루에
다시 이 해의 눈이
쌓여서 은으로 빛나옵니까
물 길으시는 당신의
붉으신 손도 보이는 듯하옵니다
산바람은 세차라 오시시 떠는 지붕마다
머리카락 같은 연기 한 오라기씩
나부껴 울리는 후언한 새벽부터
씩씩거리고 몰려다니는 낯선 청년들
그 흉칙스런 총칼의 대열을
눈으로 나무래고 돌아서시며
어느 구름 아래 비명에 쓰러졌을
이 아들을 다시금 우시옵니까
두어 걸음 옮기곤
서너 걸음 옮기곤
멈춰서서 흠치시는 당신의 이마에도
은실로 날리는 것이 보이는 듯하옵니다
도라지빛 무궁한 궁륭의 천정 밑
빼어나 사시 사철 영롱한 連峰을
병풍 치고 우거지던 白楊의 마을
믿음 깊은 사람들 한이웃하여
홀어머니 우리하고 고이 사시던 곳
그곳인들 이 난리의 불길에서 남아났으리까
햇살 물결치며 부서지는
이 아침 뒷골목 호적한 들창 위
미사 촛불마냥 주렁주렁 고드름 켜드리우고
잊은 듯 개어오른 남도 정월의 하늘
어린 날 고향에 누운 듯 --- 잠시는
아슴프레 멀어지는 피난길의 고달픔
나에게 이제 그리움은 그저
그 하늘에 그 산, 산 아래에 그 마을
관모봉 백리 기슭 휘파람바람 자고
눈길 화안히 트이는 그 어느 날에사
그윽한 그 품속에 가서 안겨 보오리까
--- 어머니 그 무릎에 목놓아 엎드려 보오리까
1955. 문학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