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29. 冠帽峰 아랫마을

높은바위 2005. 7. 26. 07:59
 

129. 冠帽峰 아랫마을

 

                        유 정

 

   ------ 어머니

  먼 관모봉 산마루에

  다시 이 해의 눈이

  쌓여서 은으로 빛나옵니까

  물 길으시는 당신의

  붉으신 손도 보이는 듯하옵니다


  산바람은 세차라 오시시 떠는 지붕마다

  머리카락 같은 연기 한 오라기씩

  나부껴 울리는 후언한 새벽부터

  씩씩거리고 몰려다니는 낯선 청년들

  그 흉칙스런 총칼의 대열을

  눈으로 나무래고 돌아서시며


  어느 구름 아래 비명에 쓰러졌을

  이 아들을 다시금 우시옵니까

  두어 걸음 옮기곤

  서너 걸음 옮기곤

  멈춰서서 흠치시는 당신의 이마에도

  은실로 날리는 것이 보이는 듯하옵니다


  도라지빛 무궁한 궁륭의 천정 밑

  빼어나 사시 사철 영롱한 連峰을

  병풍 치고 우거지던 白楊의 마을

  믿음 깊은 사람들 한이웃하여

  홀어머니 우리하고 고이 사시던 곳

  그곳인들 이 난리의 불길에서 남아났으리까


  햇살 물결치며 부서지는

  이 아침 뒷골목 호적한 들창 위

  미사 촛불마냥 주렁주렁 고드름 켜드리우고

  잊은 듯 개어오른 남도 정월의 하늘

  어린 날 고향에 누운 듯 --- 잠시는

  아슴프레 멀어지는 피난길의 고달픔


  나에게 이제 그리움은 그저

  그 하늘에 그 산, 산 아래에 그 마을

  관모봉 백리 기슭 휘파람바람 자고

  눈길 화안히 트이는 그 어느 날에사

  그윽한 그 품속에 가서 안겨 보오리까

   --- 어머니 그 무릎에 목놓아 엎드려 보오리까

 

                             1955. 문학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