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26. 어린 딸에게

높은바위 2005. 7. 25. 08:49
 

126. 어린 딸에게

 

                                                     박 인 환

 

  기총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죽음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3개월 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화차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哀訴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1955. ꡔ박인환선시집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