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회담장
-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첫 휴전 회담은
1951년 7월 10일 적진 개성에서 시작되었다.
휴전을 현 전선에서 성사시키자는
UN군 측 주장을 놓고
2년여를 끌었다.
자주성의 우위를 과시하는 북한의 남일,
그는 미 해군대장 “죠이”를 상대역으로 회담에 임했으며,
남한에서는
참관인 자격으로 백선엽 소장이 참여했다.
회담장을 출입하기 위해
UN측이
백기를 차량에 꽂아야 했던 것은
항복을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북한 측에서는
UN군 측의 대표들과
키를 같아 보이게 하기 위해
무례하게도 UN군 대표들의 의자 다리를
짧게 잘라 놓는 촌극도 있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을 놓고
신경전은 그칠 줄 몰랐다.
게다가 UN군 측은
북한 측 대표 숙소에
네 차례나 폭격을 행한 이유로
북한 중공 측 비난에
8월말 이후 2개월 동안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다가
UN군 총사령관 리치웨이장군의 사과로
10월 25일 양측 대표단은
판문점으로 회담장을 옮겨
그곳에서 다시 회담을 시작했다.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