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살인, 고문 등
피 묻은 공포의 그림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13만 명을
수용할 만큼 큰 수용소 안에서는
인공기가 나부끼고
인민군의 군가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반공, 친공으로 단정된 충돌은
밤, 낮을 가리지 않았다.
때로는 포로들의 폭동진압작전에
최루탄, 수류탄, 탱크가 동원되어야했고,
1952년 5월 7일에는
포로수용소 사령관 프란시스 돗드 준장이
포로들에게 인질로 잡혀
협상조건이 되기도 했다.
제시하는 것마다
요구하는 것마다
이미 전쟁에서 잃어버린
명분을 찾기 위한 앙탈이었다.
평화는 길고 전쟁은 짧은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