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비백산하는 산자락
총성이 멎은 전선의 달밤은
혼자인 것이 좋았다.
내 의식 속에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을 뵈올 수 있어
총성이 멎은 전선의 달밤은
혼자인 것이 좋았다.
화약 냄새로 절어진 달빛은
구멍 난 가슴에
달맞이꽃 한 아름 안은 어머니 환상으로 채웠다.
어느 날의 밤이었던가.
내 가슴에 달맞이꽃 한 송이를 달아주시던
그 환상을 깨고
수천발의 포탄이 쏟아져
혼비백산하던 산자락.
눈알이 빠지고
발목이 부러지고
팔 다리가 잘린 아픔으로,
허옇게 누워있던 산 허리춤,
어린 나이로 토종개처럼 충성스럽기만 했던
나는
명령에 따라 진지를 옮기며,
옮기면서 산불처럼 울었다.
풀꽃들은 목이 꺾이고
나무뿌리는 뽑힌 채로 자빠져 있었다.
박소위, 김일병, 그리고 군번 없는
우병장의 얼굴도 끝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