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과 그 비극의 역사/아버지의 城

혼비백산하는 산자락

높은바위 2019. 7. 2. 19:24



 

 

혼비백산하는 산자락

 

 

총성이 멎은 전선의 달밤은

혼자인 것이 좋았다.

 

내 의식 속에 떠오르는

어머니 얼굴을 뵈올 수 있어

총성이 멎은 전선의 달밤은

혼자인 것이 좋았다.

 

화약 냄새로 절어진 달빛은

구멍 난 가슴에

달맞이꽃 한 아름 안은 어머니 환상으로 채웠다.

 

어느 날의 밤이었던가.

내 가슴에 달맞이꽃 한 송이를 달아주시던

그 환상을 깨고

수천발의 포탄이 쏟아져

혼비백산하던 산자락.

눈알이 빠지고

발목이 부러지고  

팔 다리가 잘린 아픔으로,

허옇게 누워있던 산 허리춤,

어린 나이로 토종개처럼 충성스럽기만 했던

나는

명령에 따라 진지를 옮기며,

옮기면서 산불처럼 울었다.

 

풀꽃들은 목이 꺾이고

나무뿌리는 뽑힌 채로 자빠져 있었다.

 

박소위, 김일병, 그리고 군번 없는

우병장의 얼굴도 끝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