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아이
엄마, 너무 지쳐 쉬고만 싶어요.
엄마 품에서 잠들게 해 주세요.
엄마의 눈물이 내 뺨을 적시네요.
여기는 춥고, 밖은 폭풍이 일지만,
가물거리는 내 눈앞에 천사들이 보여
난 그만 눈 감아 버려요.
엄마, 내 옆에 천사가 있어요.
음악 소리도 들려요.
엄마, 저 천사 좀 보세요.
아름다운 하얀 날개를 갖고 있어요.
하느님의 선물인가 봐요.
나풀거리고 있어요.
파란 노란 그리고 붉은빛들이
꽃봉오리들이에요.
숨 쉬고 있는 한, 나도 날개를 얻고 싶어요.
하지만 난 이제 죽은 몸이에요.
엄마, 왜 내 손을 꼬옥 쥐세요.
엄마, 왜 볼을 그렇게 비벼요.
엄마 뺨에 눈물이 있네요.
그런데 불같이 타고 있어요.
엄마, 난 이제 엄마 곁에서 멀어져만 가요.
이제 한숨일랑 거두세요.
그리고 슬픈 노래를 불러 주세요.
그러면 나도 따라 부를게요.
아아, 몹시 피곤해
이제 눈을 감아야겠어요.
엄마, 보세요, 나에게 입 맞추는 천사를.
* * * * * * * * * * * * * * *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년 4월 2일 ~ 1875년 8월 4일)은 덴마크의 동화작가이자 소설가다.
그는 사는 동안에 여러 나라 어린이들을 기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시와 이야기는 15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가 쓴 작품은 여러 영화, 연극, 발레, 애니메이션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은 안데르센이 루터교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대부모(代父母)가 붙여준 이름이다.
안데르센의 집안은 할머니가 병원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할 정도로 가난하여, 안데르센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인 어머니는 안데르센에게 예수를 공경하는 순수한 개신교 신앙을 심어주었고, 아버지는 인형극과 독서를 통해 어린 그에게 옛날이야기와 <아라비안 나이트>를 자주 들려주며 상상력과 교양을 심어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가장의 자리가 비게 되자 안데르센은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빨래를 대신해 주는 일을 했다.
1819년에는 연극배우의 꿈을 품고 코펜하겐으로 갔으나, 변성기 이후 목소리가 탁해지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더구나 가난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문법과 맞춤법이 엉망인 그의 연극대본은 극단주에 의해 반송되었기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다.
다행히 그의 작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덴마크 의회 의원인 요나스 콜린의 후원으로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으나, 안데르센이 시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교장과의 갈등 때문에, 5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1828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몇 편의 희곡,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드러낸 안데르센은 《즉흥시인》(1834년 작)으로 문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1835년부터 본격적인 동화 저작에 들어갔는데, 어른들도 읽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일부 문학비평가들은 "《즉흥시인》을 쓸 정도로 뛰어난 작가가 어린이를 속이는 이야기나 쓴다."는 가혹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1872년까지 발표한 총 160여 편의 동화 작품은 모두 유명해져서 연금 수령, 안데르센의 그림이 들어간 우표 발행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62세 때 그는 고향 오덴세의 명예시민으로 받들어졌으며 1875년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덴마크 국왕과 왕비가 참석하였다.
2005년 4월 2일에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0주년 기념 웹사이트가 개설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