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만수간(千雲萬水間)
千雲萬水間(천운만수간) : 자욱한 구름과 골짝 물
中有一閑士(중유일한사) : 그곳에서 나는 한가롭다.
白日有靑山(백일유청산) : 낮에는 푸른 산속을 거닐고
夜歸巖下睡(여귀암하수) : 밤 들어 바위 아래 잠들면
倏爾過春秋(숙이과춘추) : 하루하루 그렇게 세월이 가도
寂然無塵累(전연무진루) : 세상 먼지 들붙지 않는다.
快哉何所依(쾌재하소의) : 기댈 곳 없는 이 자유로움
靜若秋江水(정약추강수) : 고요한 이 마음 가을 강물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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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양으로도 닮고, 성품으로도 닮으라고 말하는 물조차도
더 맑아지고 깊어지고 고요해지는 때가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들의 활동이 줄어드는 때다.
가을 물이 깊어 보이고 맑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라앉는 시간이 없는 물은 결국 썩은 물이 되고 만다.
마음에 일렁임이 많을 때 사는 것이 바빠지고, 탁해지고, 힘들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탐욕의 대명사인 자본조차도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따라 길을 간다는데
잘 살아보겠다는 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많이 품고 산다면
그중에 어떤 것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서 살더라도 전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전일(專一)이란 몸과 힘을 한 곳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몰입할 수 있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깨달음은 도달해야 할 종착지가 아니며
말로 설명되는 형상으로서의 그 무엇도 아니다.
삶의 주변에 널려있는 자잘한 것들을 보아내는 눈을 얻는 것이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보고 여럿을 얻으면 여럿을 보고
작게 얻으면 작은 것을 보고 크게 얻으면 크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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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자(한산, 寒山子, 691~793 추정)는 당대(唐代)의 고승(高僧)이자 시승(詩僧)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본명은 알 수 없고, 한산자 또는 한산 성인으로도 불렸다.
풍간 선사(豊干禪師)의 제자 습득과 교유하였으며, 불교 철학에 두루 통하여 문수보살의 화신(化身)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시는 대개 선을 탐구하는 내용이며, 때로는 전통적인 운율을 무시하기도 하나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하고 있어, 예로부터 선가에서 많이 읽혔다.
그는 시와 선(禪)을 일치시켜 당시(唐詩)의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