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길에서 만난 병사
피난길에서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알 수 없는 병사들과 마주쳤다.
병사들은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김일성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으면 쏴 죽인다고
총부리를 가슴에 겨누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바위 같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난리를 피해 집을 나섰을 뿐
사상도 정치도 모르는 순박한 농사꾼이니
누구를 지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했다.
잃을 것을 다 잃은 내 가슴의 끝,
지금 내가 살아야 할 땅의 주소는
어디에 있을까.
*「 다시 보는 한국전쟁 」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