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본격적인 시문학은 12세기 이후에 시작되었다 하겠다.
12세기의 봉건주의 전성기를 지나면서 수많은 궁정시를 탄생시켰고 목가나 연애시, 그리고 무훈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로 12세기 초엽에 나온 무훈적 시인 "롤랑의 노래"는 회교도와 싸우고 승리한 역사적 사실을 읊은 일종의 서사시라 하겠다.
이와 병립하여 아더왕의 전설을 중심으로 노래한 "브르따뉴이야기(원탁이야기)"가 있는데 귀부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기사도의 연애를 취택한다.
후세 작가들은 특히 가극에서 이것의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
그 무훈시와 "브르따뉴이야기"는 12세기에 걸쳐서 제작되어 음유시인들이 귀족들의 성관 또는 시장 등을 편력하며 노래하고 다닌 것이다.
프랑스의 서정시는 먼저 남방의 트르바드르에 의하여 발달되었다.
본시 프랑스어는 오끄어라는 남방어와 오일어가 발달되어 후일의 프랑스어를 이룬다.
트르바드르는 오끄어로 노래한 시인들이며 그들의 연애를 노래한 서정시는 당시의 유럽을 풍미하였으나, 13세기에 그들의 비호자이던 투를루즈 백작이 알브사교 토멸전에 패함으로써 중세기를 장식하던 이들도 쇠잔하였다.
이상은 모두가 주로 지배계급인 귀족사회의 환경, 현실, 이상을 반영한 문학이며, 이에 대립한 서민문학으로서 동물설화 "여우이야기"는 골르인의 특징인 농조의 신랄한 비판정신이 때로는 권력계급을 풍자해가며 민중을 대변하여 차츰 일어서가는 서민층의 실력을 반영하고 있다.
중세기문학은 13세기의 우의문학인 "장미이야기"를 고비로 하여 100년전쟁을 거쳐 쇠퇴하게 되고, 14세기 후반 15세기는 현세적, 풍자적, 비판적인 경향을 통하여 르네상스로 옮겨지는 과도기에 처한다.
시가는 15세기에 들어 브르고뉴 궁전을 중심으로 수사학파가 일어나서 형식적 기교에 흐르는 작품을 이루었으며, 그 밖에도 샤를르 도를레앙 같은 우수한 서정시인도 있었으나, 누구보다도 비용은 프랑스 문학사상 최초의 위대한 서정시인으로서 무궤도한 생애의 궁핍과 죽음의 공포와 사랑의 심정을 노래하였다.
그의 자아심정에 충만한 영감은 문예부흥의 여명을 고하는 것이었다.
중세기는 그리스도 교리의 냉혹한 전횡 밑에 사색의 자유가 억압된 생활, 즉 종교의 시대였고, 문학작품은 거의 작가와 생애를 알 수 없는 무명씨의 것이 많았다.
그 반면에 르네상스 이후의 문학은 명백히 그것이 개인의 것임을 보여주며 16세기에 이르러 자유사상과 자연 인생의 예찬이 시작된다.
여기에 교회의 규율이라는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인간혼의 움직임이 있다.
마로는 의연히 신교도편에 서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귀족, 승려등의 전권과 우열을 풍자 조롱하는 경모한 시를 남겼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프랑소아 1세가 이탈리아를 3차에 걸쳐 원정하던 차에 당시 그곳에 찬란하게 개화하던 르네상스 문화와 접촉하여 많은 예술가를 초빙함으로써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이와같이 새로운 인간관을 발견하고 전분야에 걸쳐 독창적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휴머니즘의 잠을 깨우고 중세적인 모든 것과의 대립에 달했던 것이다.
<결코 르네상스는 화려한 시대가 아니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시대는 중세적 잔재와 싸워야 했으며 절대적 진리로 믿어지던 교리에 이론이 생기는가 하면, 고대 문화와 과학의 맹아 사이에서 신음해야 하고, 개인간의 알력이며 내란, 흑사병의 맹위, 대학살사건등 혼란이 극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16세기 시가는 수사학파 이후 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은 리용학파에 이르러, 내성적인 난삽한 시풍을 보이며 그 수령 세브는 상징파의 원조로 간주된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시가는 롱사르를 중심으로 하는 칠성시파(七星詩派)의 결성으로 그 절정에 이른다.
그들은 죽은 고어가 아니라 산 자국어의 개화에 영광을 주려는 것이었으며, 이로써 이탈리아 추종의 태도를 끊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어에 새로운 형식과 운율을 적용하여 자국어에 의한 문학이 그리스 · 라틴어에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여야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심정을 그리스 고전에서 전수하여 본격적인 프랑스 고전문학의 형식을 마련코자 한 벨레의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의 선언이다.
이 시파는 17세기 이후 망각속에 버려져 있다가 낭만파의 대두에의한 서정취미의 발흥으로 그 진가가 다시 인정된 것이다.
16세기 휴머니스트들은 중세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노래해 왔다.
17세기는 중세 붕괴에 필요했던 자유분방성이 정리되는 시대이다.
중앙집권 절대군주제의 확립으로 사회의 질서가 정제와 규율을 숭상하던 취미는, 문학에 반영되어 취미의 세련을 강조하는 고전주의의 본격적인 발전단계로 들어갔다.
당대인에 관한 보왈로의 날카로운 비판은 고대모방에 의한 체계법칙을 요구하고, 그의 스승이며 고전주의의 전형적 시인 말레르브의 엄격한 시형을 추앙한다.
때문에 프랑스의 시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몰개성 속에서 서정의 용천을 읽는다.
17세기 초부터 랑부이에 후작부인 등의 살롱을 중심으로 하여 온갖 장르의 문예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은 작태취미의 발전에 알맞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에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고전주의의 비판 기준을 설정코자 창설된 관립기관이다.
라퐁테느는 경묘한 해학조의 우화시를, 라 로슈푸코는 격언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행동이 이기심의 소산이라는 것을, 그리고 라 브뤼에르는 "사람은 가지가지"를 내놓았다.
18세기는 볼테르 · 디드로 · 루소에 의하여 대표된다.
이들에 의하여 고전주의가 국가와 교회에 연결된 유대는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볼테르는 고전적 취미와 군주제도를 지지하면서 문학 · 철학 · 역사등 널리 사회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는 지배자의 교화에 의한 사회개혁을 기도하였으며, 루소는고전주의의 몰개성에 대하여 자기 고백의 형식으로 감성의 우위를 주장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이 사상은 현대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인 여러 부문의 근본문제의 근원을 캐어준 것이다.
디드로를 중심으로 한 "백과전서파"는 18세기에 17세기 초의 말레이브 이래 고갈되었던 순수 서정의 원천을 셰니에에 의하여 소행시켰다.
17세기의 고전주의는 왕조의 운명과 더불어 18세기에 멸했으나 그의 이성적인 문학정신은 현대에도 그 생명을 잃지 않고 있다.
낭만주의 문학에서처럼 서민이 문학에 표현되기는 아마도 19세기에 비롯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의 전제, 7월혁명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전통은 근본적으로 파괴되었다.
혁명의 와류에서 일조에 몰락한 귀족청년들은 그들의 도피유랑에서 외국문학의 진수를 체득한다.
여기서 낭만주의는 출발하며 변천이 심한 현실의 불안과 고독감에 문학은 주로 공상 · 명상의 가운데서 영감을 찾게 되었다.
라마르틴은 자연 속에 녹아든 인간감정을, 비니는 철학적 명상으로 우주 속에서 생명의 진실한 의의를, 뮈세는 오로지 인간 감정 속에 살며 지쳐버린 세기말병 환자의 고뇌를 노래하고 구하며 호소하였다.
위고는 낭만주의의 통솔자이며 그의 희곡 "에르나니"의 상연은 고전 취미 타도의 결정적인 일격이었다.
그는 낭만파의 승리를 끌어들이고 이 신학파의 완전 무결한 '아버지'로 군림하였다.
낭만주의의 운동은 신비주의와 "예술을 위한 예술"에로 기우는 한편 현실로 향해가는 사실주의로 옮겨져갔다.
시 우위의 문학이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산문 우위로 변해갔다.
시가는 릴르를 중심으로 하는 고답파의 시대로 되고, 소설에는 "보바리부인"의 플로베르가 나왔다.
여기에 때를 같이 하면서도현실주의를 거치지 않고 직접 상징파의 감성을 받아들인 시인이 보들레르이다.
그의 시집 "악의 꽃"은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으나 상징주의 · 순수시 · 초현실주의의 시원이 됨으로써 프랑스 문학사상에 획기적인 수확을 가져왔다.
브들레르를 시조로 하는 상징파는 베를레느 · 랭보 · 말라르메에 의하여 대표되며, 말라르메야말로 그 중심 인물로서 그의 진지한 예술탐구는 현실을 넘어 높이 관념계의 순수무구에 달하며 언어를 매개로 하는 예술에 의하여 소우주를 건설하였다.
20세기의 문학은 제1차대전을 경계로 하여 전시대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와 함께 그것의 비판에 몹시 동요하고 있다.
문화, 인간성, 평화옹호의 회합이 많은 지식인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있는 사실은, 이것들의 위기불안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에 있어서는 이같은 새로운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의 옹호가 개개인에 의하여 여러가지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다.
지드 · 발레리 · 푸르스트 등은 각자의 작품으로 대전후의 세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계가 제2차대전으로 돌입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함으로써 레지스탕스문학(반항문학)을 낳았다.
그리고 현대의 문학은 사회봉사의 문학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면서도 기계화하는 인간을 시정하려는 휴머니즘의 태도, 인간상의 탐구는 끊임없이 행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