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이신(李紳)

높은바위 2024. 12. 11. 07:15

 

憫農(민농 :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며)

 

1.

春種一粒粟(춘종일립속) 봄에 좁쌀 할 알 심어

秋收萬顆子(추수만과자) 가을에 만 알을 거두네

四海無閑田(사해무한전) 세상에 노는 땅 없건만

農夫猶餓死(농부유아사) 농부가 굶어서 죽다니

 

2.

鋤禾日當午(서화일당오) 한낮에도 김을 매니

汗滴禾下土(한적화하토) 포기마다 땀방울 뚝 뚝

誰知盤中飱(수지반중손) 누가 알리 밥상의 밥이

粒粒皆辛苦(입입개신고) 한 톨 한 톨 피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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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매일 먹는 밥, 그 쌀 한 알을 생산하기 위해 3천6백 단계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께서는 농민의 고통을 모르는 자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첫 시는 세상에 빈 땅이 없이 농부가 경작을 하는데 정작 농부가 굶어 죽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강렬한 문제 제기만으로 사람들은 그 질문에 공감하고 생각을 한다.

한 알을 심어 가장 많은 알을 수확하는 조를 심고 천하에 놀리는 빈 땅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데 농부들이 왜 굶어서 죽어야 하는 것인가?

 

두 번째 시는 한 톨의 밥알에 담긴 농민의 고생을 말하고 있다.

내 입에 들어오는 한 숟가락의 밥에는 수많은 밥알이 붙어있다.

첫 시에 쌀을 말하지 않고 조를 말해서 더욱 시에 생기가 돈다.

조밥 한 숟가락을 내 입에 넣자면, 온 여름 내내 풀과 전쟁을 치러야 하고, 가을에 수확을 해야 하고, 조 알갱이를 절구에 넣고 찧어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 밥알 한 톨 한 톨에 농민의 고생이 어려 있다는 말이다.

 

시는 아주 짧고 간단하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시를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교화의 측면에서 이 시를 보면 더욱 의미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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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李紳, 772 ~ 846)은 당나라 때 재상을 지낸 시인이다.

원진(元鎭), 백거이(白居易)와 교유하였다.

회남(淮南) 절도사 등 여러 관직을 맡았으며, 당 무종(武宗) 때 재상을 지냈다.

이 시  '민농(憫農)'은 이신의 대표작으로 연작시이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암송되는 국민 시이다.

영어권에서도 번역되어 널리 애송된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직후, 당시 5살이던 그의 외손녀 아라벨라(Arabella)가 중국어로 이 시를 암송하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당시 웨이보 등 중국 웹 포털에서 1,00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민농(憫農)'은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며'이다.

우리가 먹는 밥의 한 알 한 알이 땀에 젖은 농부의 고된 노동의 결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농민의 애환과 먹는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시이다.

 

이런 시를 사회시나 애민시라고 한다.

민생고라든가, 학정을 주제로 하여 위정자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일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흔히 한시의 주제로 즐겨 다루어지는 풍류나 사교, 한적 등에 비해 이런 종류의 시는 적은 편이지만 그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다.

《시경》과 《초사》에 벌써 시의 사회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요임금 때의 <격양가>와 수많은 악부시 중에는 사회시가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