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간행(長干行)1)
妾髮初覆額(첩발초복액) 내 앞머리가 겨우 이마를 덮게 된 소녀시절,
折花門前劇(절화문전극) 나는 꽃을 꺾으며 문앞에서 무심히 놀았습니다.
郎騎竹馬來(낭기죽마래) 당신이 죽마(竹馬)를 타고 찾아 와서는
繞狀弄靑梅(요상농청매) 함께 침상가에서 청매(靑梅)를 가지고 놀았지요.2)
同居長干里(동거장간리) 우리는 이 장간(長干)마을에 살아 언제나 함께였고,
兩小無嫌猜(양소무혐시) 둘 다 어리기에 의심도 없이 천진난만했었지요.
十四爲君婦(십사위군부) 열네 살 때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었지만,
羞顔未嘗開(수안미상개)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지요.
低頭向暗壁(저두향암벽) 머리숙여 캄캄한 벽쪽을 향한 채,
千喚不一回(천환불일회)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지요.
十五始展眉(십오시전미)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환한 얼굴 되어,
願同塵與灰(원동진여회) 티끌이나 재가 되더라도 당신과 함께였으면 했지요.
常存抱柱信(상존포주신) 당신의 변치않는 사랑은 미생(尾生)과 같았고,3)
豈上望夫臺(기상망부대) 남편을 기다리며 망부대(望夫臺)4)에 오를 생각조차 안했습니다.
十六君遠行(십육군원행) 열여섯 살 때 당신은 먼 길을 떠나셨으니,
瞿塘艶澦堆(구당염여퇴) 저 구당 골짝 염여퇴 바위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5)
五月不可觸(오월불가촉) 한여름 오월이라 장강에는 가까이 갈 수 없었고,
猿聲天上哀(원성천상애) 강기슭에서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슬프게 하늘을 울렸지요.
門前遲行跡(문전지행적) 우리 집 문앞에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시기에,
一一生綠苔(일일생록태) 당신이 남긴 발자취 하나하나에 이끼가 끼었습니다.
苔深不能掃(태심불능소) 이끼는 깊히 박혀 쓸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落葉秋風早(낙엽추풍조) 가을바람 일찌기도 불어 나뭇잎 떨어지고,
八月胡蝶來(팔월호접래) 어느덧 중추 팔월, 나비가 날아 왔습니다.
雙飛西園草(쌍비서원초) 나비는 짝지어 서쪽 동산 풀위를 날고 있고,
感此傷妾心(감차상첩심) 그것을 보니 내 마음은 슬퍼집니다.
坐愁紅顔老(좌수홍안로) 시름이 있음은 한창 필 내 홍안이 늙어가기 때문이니,
早晩下三巴(조만하삼파) 당신이 삼파(三巴)에서 내려와 돌아오실 날이 언제입니까?6)
預將書報家(예장서보가) 그때는 미리 편지로 알려 주세요.
相迎不道遠(상영부도원) 멀다하지 않고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直至長風沙(직지장풍사) 이대로 곧장 장풍사(長風沙)까지 가려 합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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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제는 장간행(長干行).
장간(長干)은 지금 남경(南京)의 남쪽에 있는 작은 동네의 이름.
2) 청매(靑梅) : 꿀에 절인 매실(梅實).
3) 미생(尾生) : 옛날 '미생'이라는 남자는 다리 밑에서 한 여자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여자가 오기 전에 갑자기 강물이 불어났다.
미생은 약속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신용을 잃는 것이라고 여겨,
다리의 기둥을 끌어안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했다함.
4) 망부대(望夫臺) : 먼 길을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화석(化石)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
또는 그 위에서 기다렸다는 돌.
중국의 각지에는 망부대, 망부산이라는 곳이 많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의 아내가 서서 기다리던 바위가 있음.
5) 구당(瞿塘)·염여퇴(艶澦堆) : 구당은 장강[揚子江] 삼협(三峽) 가운데 하나.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에 있는데 양쪽 기슭이 가파르고
물줄기가 급하다.
염여퇴는 구당협에 있는 거북 모양의 큰 바위.
6) 삼파(三巴) : 사천성(四川省) 동부의 파동(巴東), 파군(巴郡), 파서(巴西)의 총칭.
지금 사천성의 동부지방을 가리킴.
낭원(閬苑)의 백수(白水)가 동남으로 흐르며, 巴 자처럼 세 번 굽어 흐르므로 삼파라 함.
7) 장풍사(長風沙) :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안경(安慶) 부근의 지명.
양자강 연안에 있으며, 장풍협(長風夾)이라고도 한다는데 미상임.
* 이백(李白)은 벗들과 어울려 사천의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 편력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은 이백 시의 바탕이 되었다.
26세 때에는 벼슬을 하기 위하여 사천을 떠나 동정(洞庭), 여산(廬山), 금릉(金陵), 양주(揚州), 낙양(洛陽), 용문(龍門), 숭산(崇山), 태원(太原)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 무렵 운몽(雲夢)에서 재상을 지낸 허어사(許圉師)의 손녀와 결혼하여 다음해 딸을 낳았다.
그 사이 당의 명장인 곽자의(郭子儀)와 친교를 맺기도 하였으며, 산동으로 옮겨 임성(任城)에 거주하였다.
이때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분(陶沔汾) 등과 조래산(徂徠山)에 모여 종일토록 음주, 작시하며 즐겨 놀았는데,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고 일컬었다.
이 장간행(長干行)은 미인의 고장인 장간의 아름다운 규수의 이야기를 읊은 작품으로 모두 15연인데, 내용은 ‘내 머리칼이 막 이마를 덮으려 할 때 문 앞에서 꽃 꺾으며 놀았는데, 그 때 낭군님은 죽마(竹馬)를 타고 와, 평상을 돌며 매실로 날 희롱해, 장간에 함께 살며 둘 다 싫지 않았지요. 나는 열네 살에 그대의 아내 되어 부끄러운 얼굴 펴본 적 없고, 머리 숙여 어두운 벽을 향하고는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지요. 열다섯 살에 비로소 눈썹 펴고 의지하며 약속을 굳게 지켰는데 지금 망부대(望夫臺)에 오를 줄 어찌 알았겠어요. 내 열여섯 살에 당신은 멀리 떠나 고초를 겪었겠지요. 외로운 우리 집 앞에는 이끼가 여러 번 돋았고 쓸어 내기 전에 가을 낙엽이 떨어졌지요.’이다.
나비 쌍쌍이 날면 그대 생각이 나 견딜 수 없어 고운 얼굴 파삭 늙어 버렸지만, 이제라도 집으로 온다는 기별만 주신다면 멀리까지 마중을 나가리다.
부부란 이렇게 끊을 수 없고 그 정은 무진한 것이리라.
장간행은 5언고시(5言古詩)의 장편 시로, 마지막 연의 압운은 草, 老, 巴, 家, 沙 자로 草와 老는 상성 ‘皓(호)’ 측운, 巴, 家, 沙는 평성 ‘麻(마)’ 평운인데 이 앞부분의 압운도 일정하지 않다.
평측은 차례로 ‘仄仄平仄平, 平平平平仄, 仄仄平仄平, 仄平仄平仄, 仄仄仄平平, 仄平平仄平, 平平仄仄仄, 仄仄平平平’으로 이사부동과 반법, 점법이 이루어진 곳은 끝 두 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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