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중국

왕유(王維)

높은바위 2015. 6. 15. 09:43

 

 

                   청계(靑溪)

 

言入黃花川(언입황화천)                  황화천(黃花川)에 들어섰다는 것이,

每逐靑谿水(매축청계수)                  푸른 시냇물만 뒤쫓아 간다.

隨山將萬轉(수산장만전)                  산을 따라서 만 번은 돌았는데,

趣途無百里(취도무백리)                  길은 재촉해도 백 리가 못된다.

 

聲선亂石中(성선난석중)                  소리는 시끄럽다, 어지러운 돌 틈.

色靜深松裡(색정심송리)                  빛깔은 조용하다, 깊은 솔숲 사이.

瀁瀁泛菱荇(양양범릉행)                  출렁출렁, 마름 노랑어리연꽃 뜬다.

澄澄映葭葦(징징영가위)                  맑디맑아, 어린갈대 큰 갈대 비친다.

 

我心素已閒(아심소이한)                  내 마음 전부터 한가로왔거늘

淸川澹如此(청천담여차)                  맑은 시내도 이처럼 담담하니,

請留盤石上(청류반석상)                  바라건대, 바위 위에 머물러

垂釣將已矣(수조장이의)                  낚시 드리우고 여생을 보낼지이다.

 

 

 

* 왕유는 시인으로서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는 이백(李白, 701-762),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와 함께 중국의 서정시 형식을 완성한 3대 시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당(唐) 시대의 자연시(自然詩)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을 ‘왕맹위유(王孟韋柳)’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왕유(王維)와 위응물(韋應物, 737-804), 맹호연(孟浩然, 689-740), 유종원(柳宗元, 773-819)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왕유는 자연시(自然詩)를 대표하는 중심인물로 평가를 받는다.

 

왕유는 화가적인 관찰로 산수를 바라본 후, 자연스러운 시어로 화면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시각적인 시를 지었다.

산수시는 언제나 아늑한 고요함을 지녔으며, 그것은 사적(死寂)이 아니라 "새 우니 산 더욱 고요해라.(鳥鳴山更幽.)"라는 것과 같이 동(動)을 통한 정(情)의 세계이다.

 

젊었을 때부터 장안에 가까운 남전(성서성)에서 망천장(輞川莊)을 경영하여 도심지를 피해 불교에 경도하는 생활을 보냈다.

그의 시에는 불교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있어 '시불(詩佛)’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그림에도 뛰어나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개조(開祖)로 여겨지고 있다.

송(宋, 960-1279) 때의 소식(蘇軾, 1036-1101)은 그의 시와 그림을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고 평하였다.

 

왕유(王維)의 시는 전기와 후기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전기의 시들이 도회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비해 후기의 시들은 전원 생활과 자연의 정취들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 가운데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소재로 한 후기의 작품들이 특히 높은 예술적 성취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데, 만년(晩年)에 남전(藍田)의 망천장(輞川莊)에 은거하면서 지은 작품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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