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北歐)문학은 스칸디나비아 3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아이슬란드의 문학을 총칭하는 것으로 이밖에도 핀란드의 그것까지 포함하여 말한다.
핀란드문학은 스웨덴어로 저술된 것이 태반을 차지하고 그 나머지의 핀란드어로 된 문학이라 할지라도 문학적으로나 풍토적으로 북구문학과 동질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넓게 북구문학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북구문학은 언어적으로는 북방 게르만의 문학으로서 근본적으로는 노르디스크(Nordisk : 북구어)에 속하면서 약간씩 특색을 달리하고 있다.
북구 최고(最古)의 문학은 원시 북구어의 루네(Rune)문 기록으로 이룩된 것으로서 북구 민족의 고대 신화 전설을 집대성하여 이룬 서사시 <에다>를 비롯하여 산문으로 된 전설 <사가>와 주관적 서정시인 스칼드의 가요 등은 그 형식이나 내용은 비록 정리된 것은 못된다.
그래도 아직 중부 유럽으로부터의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북구적 특색을 간직한 것으로서 주로 고대노르웨이 ·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여 아이슬란드에 전승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적 전통은 중세기의 그리스도교의 전래와 더불어 전통적 이교정신이 쇠퇴하고, 모국어 대신으로 라틴어가 존중됨으로 말미암아 아이슬란드가 북구어의 오랜 전통을 유지한 외에는 스웨덴 · 덴마크 · 노르웨이어로 분화되고, 문학도 중부 유럽의 기사문학의 번역이나 모방에 빠져 쇠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북구에서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새 문화를 수입 흡수하는 일과 자기 국위를 확장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덴마크는 그 지배권을 노르웨이문학에까지 영향을 주어, 덴마크에 의한 양국 공통의 문학을 구축하기에 이르러 노르웨이 독자의 문학은 민화 · 민요에서 겨우 그들의 여명을 유지하는데 불과하였다.
그러나 덴마크어 문학의 주요 작가는 노르웨이 사람이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문학계를 지배한 것은 국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온 독일 시인 클롭스토크가 전개한 낭만주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경향에 대해서는 덴마크 재류의 노르웨이 사람으로 조직된 노르웨이 협회가 있어서, 북구 전체의 공통적인 건전한 국민감정의 고양을 주장하기에 이르러, 이로써 자기 나라 특유의 문학 융성에 길을 닦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덴마크 사람들의 성격에 영합된 바 있기 때문에 간혹 쇠퇴의 징조는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유력한 낭만시인의 출현을 얻게 되었다.
그 화려한 필치와 정력적인 창작력으로 북방의 시왕(詩王)으로 호칭된 욀렌술레거를 필두로 유명한 시인이며 동시에 국민 운동가인 그룬트비, 산문의 대가인 안데르센, 세계적 철학가 키에르케고르 등이 대표적 작가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곧 독일과 프랑스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문학평론가인 브란데스가 코펜하겐 대학의 강단에 서서 <19세기 문학의 조류>란 제목으로 강연을 한 1871년을 계기로 낭만주의는 오랜 꿈을 깨뜨리고 여기에 자연주의 문학이 찬란하게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덴마크에서 국민적인 것으로의 복귀, 향토 문학의 출현, 운문의 재생이라는 세 가지 형태를 취하는 경향을 나타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신낭만주의, 신사실주의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여러 분파가 있기는 하나 로만스와 서정시와 목가(牧歌)가 어느 작가에게도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비단 덴마크에 한한 문제도 아닌 북구문학 전반적인 특색이라고 하겠다.
노르웨이는 1814년에 덴마크에서 독립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문학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독립을 계기로 일체의 덴마크적인 것을 급진적으로 배척하려는 국수파인 농민파와, 점진적인 입장을 취하여 넓은 시야에서 자기 것을 찾으려는 자유파와의 사이에 열렬한 논쟁이 벌어져 국민적인 것의 본질 문제로 오랜 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는 동안 고대 북구 민화의 계통을 밟은 농민의 방언이 연구됨으로써 공용어로 되어 있던 덴마크어 계의 릭스몰에 대항하는 란스몰(민간어)의 부활이 고양되어 점차로 문학에서도 이를 이용하는 경향이 생겨 노르웨이문학은 이와 같은 릭스몰 문학과 란스몰 문학의 두 가지 계통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노르웨이문학이 세계 문학에서 그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기에 들어가서 입센과 뵈른손과 같은 대가가 출현하면서부터라고 하겠다.
그 후 대체의 경향은 사실적 문제적 자연주의로부터 신낭만주의 신사실주의가 릭스몰 작가들 사이에, 그리고 사가에서 출발한 씨족 소설이나 목가적 농민문학은 란스몰 작가들 사이에 지배적이었다.
스웨덴에서는 1611~1718년 사이의 강대국 시대에 국어의 순수성과 운율의 정비가 완성되어 다음의 자유 시대에는 스웨덴 한림원이 1786년 창립함으로써 문학의 진보에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어 교훈시와 영웅대운구가 유행하였고, 극에서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모방이 많이 이루어졌고, 영문학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있었다.
다음의 구스타프시대에는 계몽 사조와 탐미적 경향이 많아 형식 편중의 문학이 유행되었으나 결국 독일의 낭만주의가 그 뒤를 잇게 되었다.
1809년 북방전쟁(北方戰爭)에 패하여 무혈혁명이 이루어지자 국민의식이 고양되어 고대 북구의 실질 강건한 기풍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고트회 등이 창립되기도 하여 이를 계기로 신문학이 활발히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의 자연주의 문학은 스트린드베리를 대표로 하고 있으며, 그 가차없는 리얼리즘과 날카로운 박력은 타에 유례를 보기 어렵다.
북구인의 근저에는 강한 낭만적 이상주의적 욕구가 있다.
이것이 그들의 현실주의에 영향을 주었으나, 자연주의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벌써 거기에 대한 반항이 싹트기 시작하여 자연주의의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만민주의)을 버리고, 자국의 전통에 복귀하는 방향으로 내달리게 되어 신낭만주의 · 신이상주의 시대를 나타내게 되었다.
덴마크에서는 외르겐센이 그의 동인과 함께 상징주의 잡지 <탑(塔)>을 낸 것을 계기로 신문학운동이 시작된다.
노르웨이에서는 전대에 계속하여 함순 · 보예르 · 운세트 등 세계적 대가를 배출하였다.
스웨덴에서는 낭만적 작가가 가장 많고 특히 시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 가운데 하이덴슈탐은 신낭만주의 서정시의 대표자이다.
라게를뢰프도 특기할 만하다.
현대의 스웨덴에는 특히 뛰어난 대작가가 없는 반면에 수많은 작가, 시인이 배출되어 문단을 찬란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끝으로 아이슬란드문학에 관하여 본다면 아이슬란드는 19세기에 들어와서 문예부흥을 맞이하였고, 인구 겨우 14만(2008년 기준 : 30만 4천명)에 불과한 현실에서도 고도의 국민교육에 힘입어 문학이 발달되어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를 배출하고 있다.
그 가운데 근대 최대의 시인으로서 베네딕손이 있다.
Kent - So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