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ㅂ

바람(風)(5)

높은바위 2025. 4. 5. 06:50

 

기압의 변화로 일어나는 대기의 흐름. 바람은 가변성과 역동적 속성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성을 일깨워주는 촉매가 되는가 하면 자유와 방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 바람은 수난과 역경, 시련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바람은 어떤 대상이나 이성에 마음이 이끌려 들뜬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람이 분다

마음의 뼈들이 일어선다

빠른 노래도 아니다

느린 노래도 아니다

바람의 뿌리에서는 모든 노래가 정확하다 (돈연, '백개의 이야기· 38', "벽암록", p. 63)

 

 

아아 남자들은 모르리

벌판을 뒤흔드는

저 바람 속에 뛰어들면

가슴 위까지 치솟아 오르네

스커트 자락의 상쾌! (황인숙, '바람 부는 날이면', "슬픔이 나를 깨운다", p. 11)

 

 

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살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김기택, '바람 부는 날의 시', "바늘구멍 속의 폭풍", p. 89)

 

 

나무에

물오르는 것 보며

꽃 핀다 꽃 핀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피고,

 

가지에

바람 부는 것보며

꽃 진다

꽃 진다 하는 사이에

어느덧 꽃은 졌네

 

소용돌이 치는 탁류의 세월이여!

 

이마 위에 흩어진

서리묻은 머리카락 걷어올리며

걷어올리며 애태우는

이 새벽!

꽃 피는 것 애달파라

꽃 지는 것 애달파라 (민영,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p. 11)

 

 

바람이 부는 밤, 동네는 잠이 깊어

어디멘지, 말방울 소리 뒷 성터로 사라진 후

시내의 얼음 부서지고 달님이 솟았세라 (김구용, '바람이 부는 밤', "시집· 1", p. 141)

 

 

그것은

바람이었지

이 지상을 흘러가던

그 모든 것은

바람이었지

 

이슬방울과

흙먼지

흙먼지와 눈물자죽

혹은 또 더운

피방울들처럼

꽃들은 무수히

피고 졌지만

그것들은 모두

바람이었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기쁨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는 기쁨

그것들마저 이젠

멀리 떠나가고

 

바람만이

불고 있다

오늘도 무심이

바람만 불고 있다 (박성룡, '바람', "꽃상여", p.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