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묘향산설화(妙香山說話)

높은바위 2024. 8. 5. 07:30

 

깊은 산속에서 날이 저문다.

나그네가 등불 켜진 외딴집에 찾아간다.

예쁜 각시가 혼자 산다.

그 각시와 정교(情交)를 한다.

그런데 그 각시의 남편이 사냥에서 돌아온다.

 

이런 유형(類型)의 설화는 우리나라에 너무 흔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남편이 돌아온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의 연속(連續)은 채집(採集)된 지방에 따라 완연하게 다르다.

기호지방(畿湖地方: 경기도  황해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 지방)에서는 침입자보다 불륜의 각시를 추방하고, 

영남지방에서는 각시보다 침입자를 추방한다.

한데 서북지방(西北地方: 서도(西道) 북관(北關) 지방을 아울러 이르는 . 서도는 황해도와 평안도를 이르며, 북관은 함경도)에서는 오히려 이 침입자를 환대하고 그 대가로 물품을 얻어낸다.

 

기호지방의 전개에서 문화적인 자제(自制) 기질을 보고, 영남지방의 전개에서 원시적인 투쟁기질을 보며, 서북지방의 전개에서 타산적인 실리(實利) 기질을 본다.

이것은 풍토학(風土學)의 기질분류로 묘향산(妙香山: 평안북도 영변)에서 채집된 박천포수(博川砲手)의 범간설화(犯姦說話)이다.

박천포수는 예쁜 자기 각시를 미련 없이 떠맡기며, "사내가 양(陽)이요 계집이 음(陰)인데, 사람에 따라 음에 양의 기운을, 양에 음의 기운을 어느 만큼 지니고 있다. 사내가 계집에게 정드는 건 양이 음속에 깃들인 동류의 양에 끌리는 것이지, 음에 끌리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가엾게도 음의 기운이 없는 순수한 양으로 여자가 정을 들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애정분석에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분량을 리비도로 표현하였다.

이 리비도는 꾸준히 대상을 향해 투사(投射)하려 한다.

그 방황하는 리비도가 동류의 리비도에 유도되어, 대상에 집착할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였다.

즉 애정은 나르시서스(자기애: 自己愛)적이고, 이 사랑의 대상에서 나르시서스적 요소를 발견 못하면, 리비도(애정능력)는 영원히 허공을 헤매어 사랑을 못하고 만다 하였다.

묘향산설화(妙香山說話)는 애정으로 맺어지는 남녀관계의 극히 현대적 분석을 음양설로 갈파하였고, 자신의 정신구조를 사랑할 수 없는 불행한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임을 자처한다.

그리고 사랑 않고 같이 사는, 문명이 강요하는 그런 비극을 서북인 답게 깨끗이 극복하는 실존적 행동력을 과시하였다.

 

이 설화는 남도에서 묻어드는 성리학 문명에 저항하는 반골(反骨) 기질과 모럴(Moral)에 저항하는 인간실존을 교훈적으로 담는 것이기에 고금의 많은 사람이 즐겨 전해 내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