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

높은바위 2024. 6. 28. 07:57

 

아베르노(Averno)

 

1.

영(靈)이 죽으면 너는 죽는다.

영이 죽지 않으면 살고.

잘할 수 없을지라도, 너는 계속하는 거야 -

선택권이 없는 일이지.

이렇게 아이들한테 말하면

아이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이란, 아이들은 생각한다 -

어른들은 늘 이런 식이야:

자기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그 모든 뇌세포들을 커버하려고

아무도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아이들은 서로에게 눈을 찡긋거리고;

의자를 뜻하는 말을 더는 기억 못 해서

영(靈)에 대해 이야기하는 늙은이의 말을 듣고 있다.

혼자가 되는 건 끔찍한 일이다.

혼자 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

혼자가 되는 것, 아무도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의자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말하고 싶은데 - 이제 나는 아무 관심이 없다.

준비를 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깨어난다.

곧 영(靈)이 포기를 하겠지 -

세상에 있는 모든 의자들이 다 너를 도와주지는 않을 거다.

내가 방 밖에 있을 때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지, 내가

새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는지.

비용을 어찌 나눌지 소곤대는 그 말을 나 들을 수 있다.

소리 지르고 싶다.

너희는 하나같이 다 꿈속에서 살고 있어.

정말 괴롭다. 그들은 생각한다, 내가 허물어지는 걸 지켜보는 일.

정말 괴롭다 새로운 걸 알 권리가 내게 있는 듯

그들이 이즈음 듣는 이런 설교 없이도.

음, 그들도 같은 권리가 있다.

애들은 꿈속에서 살고 있고, 나는 귀신이 될

준비를 한다. 소리 지르고 싶다

안개가 걷혔어 -

그건 새로운 인생 같다:

그 결과에서 너희 지분은 없다;

그 결과를 너희 알잖아.

생각해 보라: 의자에 앉은 육십 년을, 또 이제 그렇게 대놓고

그렇게 겁 없이 추구하는 그 필멸의 영(靈)을 -

그 베일을 걷어 올리려고.

네가 무엇과 작별하는지 보려고.

2.

오랫동안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그 벌판을 다시 보았을 때, 가을이 끝나 있었다.

여기선, 시작하기도 전에 거의 끝난다 -

늙은이들은 여름옷은 아예 가지고 있지도 않다.

벌판은 눈으로 뒤덮였다, 순백으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표시도 없었다.

농부가 새로 씨앗을 심었는지 아닌지도

너는 몰랐다.

아마도 그는 포기하고 떠났다.

경찰은 그 소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나라로 이사 갔다고 잠시 후에 경찰은 말했다,

벌판이 없는 나라로.

이런 재난은

지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또 이런 사람들은 - 재난이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잠시 후에 나는, 얼마나 어두운지 깨달았다, 얼마나 추운 지도.

한참을 -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일단 대지가 어떤 기억도 지니지 않기로 결심하면

시간은 어떤 면에선 의미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겐 그렇지 않다. 유언장을 작성하러

아이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라에서 다

차지할까 봐 아이들은 걱정이다.

아이들은 언젠가 나와 함께 와야 한다

눈 덮개 아래 이 벌판을 보려면.

그 모든 것이 저기 쓰여 있다.

무(無): 나는 아이들에게 줄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게 첫 번째 부분이다.

두 번째는: 나는 화장(火葬)은 싫다.

3.

한쪽에선, 영혼이 헤매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공포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

그 사이엔, 실종의 구덩이.

어린 소녀들이 내게 묻는다

아베르노 근처에서 자기네들이 안전할지 -

추워서, 소녀들은 잠시 남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

또 한 아이가 말한다. 농담처럼, 아니 너무 먼 남쪽은 말고요 -

나는 말한다. 더없이 안전하지,

이 말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 말은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

너는 기차를 탄다, 너는 사라진다.

창문에 네 이름을 쓴다, 너는 사라진다.

이런 장소들 사방에 있다.

어린 소녀로 네가 들어가는 장소,

거기서 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 벌판처럼, 불에 탄 한 사람.

나중에 그 소녀는 떠났다.

아마도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린 증거가 없다.

우리가 아는 건 다만:

불에 탄 벌판.

하지만 우린 그걸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녀를 믿어야 한다.

그녀가 한 것을.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이 지상을 다스리는

우리가 이해 못 하는 힘에 불과하다.

소녀들은 방학을 생각하며 행복하다.

기차는 타지 말거라, 나는 말한다.

소녀들은 기차 창문에 입김 호호 불어 이름을 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너희 참 착한 소녀들이구나,

이름을 뒤에 남기려 애쓰니.

4.

우리는 그 섬들을 항해하며

하루를 다 보냈다.

반도의 일부분이었던

그 작은 섬들

그러다 섬들은

산산이 부서졌고 지금은

북쪽 바닷물에 떠다니는 게 보인다.

나한테는 그 섬들이 안전해 보였다,

거기엔 아무도 살 수 없으니 나는 생각한다.

나중에 우리는 주방에 앉아

저녁이 시작되는 걸 보고 있다 그러고는 눈.

첫눈, 그리고 또 눈.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눈에 넋을 잃고서

마치 어떤 난기류가

예전에 숨어 있다가

막 나타나기 시작한 듯,

그 밤 내부의 어떤 것

이제 드러나 -

침묵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서로 믿는 친구들에게

극심한 피로에도 질문한다

서로가 더 잘 알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공유된 느낌으로

어떤 통찰에 닿기를 바라며.

자신의 필멸을 깨닫도록

강요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인생의 기회를 놓치는 게 가능한가?

그런 질문들.

눈이 퍼붓고. 그 칠흑의 밤은

바지런한 순백의 대기로 변모되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이 드러났다.

그 의미만은 드러나지 않았다.

5.

첫겨울 후에 그 벌판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지런한 고랑들은 없었다.

밀 내음은 계속되었는데, 다양한 잡초들과 섞여

되는대로 퍼지는 향기였다. 이걸 사람들이

어찌해야 하는지는 아직 생각 못 했다.

당혹스러웠다 - 그 농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죽었다고도 했고

뉴질랜드에 딸이 있어서

거기 밀 대신 손녀를 키우러

갔다고도 했다.

알고 보면, 자연은 우리와 같지 않다.

자연은 기억의 저장고가 없다.

벌판은 성냥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고,

어린 소녀들을 두려워도 않는다. 벌판은

고랑들도 기억하지 않는다. 벌판은 몰살되고, 불에 타고,

그리하여 일 년 후에 다시 살아난다.

이상한 어떤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듯.

농부는 창문 밖을 빤히 응시한다.

아마도 뉴질랜드에서. 아마도 다른 어느 곳에서.

그는 생각한다: 내 인생은 끝났어.

그의 인생은 그 벌판에서 스스로를 표현했다;

대지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는 더 이상은

믿지 않는다. 대지가, 그는 생각한다,

나를 제압했어.

그 벌판이 불타던 그날을 기억한다,

사고는 아니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 안의 심오한 어떤 것이 말했다: 이렇게라면 나는 살 수 있어,

시간이 좀 지나면 싸울 수도 있어.

끔찍한 순간은 그의 작업이 지워진 후 그 봄이었다,

그때 그는 알게 되었다 대지는

애도하는 법을 모른다는 걸, 애도하는 대신에 바꿀 거라는 걸.

그런 다음 그가 없어도 계속 존재할 거라는 걸.

 

* * * * * * * * * * * * * * *

 

*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 1943년 4월 22일 ~ 2023년 10월 13일)은 미국의 시인, 수필가이다.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하였고, 1993년 시집 《야생 붓꽃》(Wild Iris)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2020년까지 총 12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예일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글릭의 시는 신화와 고전 작품들에서 모티브를 얻는다.

대표 시집 《아베르노》(2006)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옥에 떨어진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해석하였다고 평가받았다.

 

루이즈 글릭은 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이유를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목소리로 개인의 실존을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라고 설명하였다.

안데르스 올스 심사위원은 이에 더해 "그녀의 시 세계는 지속적으로 명료함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몽상과 망상에도 귀를 기울이고, 그 누구보다도 자아 망상에 맞서고 있다"라고 논평하였다.

여성 시인으로서는 1996년 폴란드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이후 두 번째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로 문학에 조예가 있어, 딸인 루이즈 글릭 또한 영향을 받았으며, 10대 때 이미 직접 지은 글을 잡지와 출판사에 투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극심한 섭식장애와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앓게 되고, 이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7년에 걸친 상담치료를 받았다.

후일 글릭은 인터뷰에서 이 시기를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경험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질병으로 인해 학위는 따지 못했다.

 

투병 중의 경험을 바탕으로 25세 때인, 1968년 첫 시집 《맏이》(Firstborn)를 냈다.

분노에 차 있으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1인칭 목소리를 내세운 이 시집은 비록 어조가 너무 거칠다는 혹평이 있었지만, 전통적 운율을 활용하면서도 구어체로 만들어진 독창적인 작법에 대한 호평이 더 많았다.

1975년 두 번째 시집 《습지의 집》에 이어, 1980년 《내림차순》, 1985년 《아킬레우스의 승리》를 낸 후 전미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90년 출간한 다섯 번째 시집 《아라라트》에서 글릭의 시 세계는 전환점을 맞는다.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던 예전과 달리, 《아라라트》에서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다뤘다.

출간 당시엔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미 의회도서관이 뽑은 가장 중요한 시에 뽑히기도 했다. 

 

1993년엔 《야생 붓꽃》이 출간되었다.

54개의 연작시를 모은 이 시집에서 글릭은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봄부터 늦여름까지의 계절변화를 그려냈다.

1인칭 꽃의 시점을 취하면서도 다변적 목소리를 불러낸 이 시집에 대해, 평론가들은 "위대한 아름다움의 시"라고 호평했다. 글릭은 이 시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글릭은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밤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의 자택에서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글릭의 친구이자 예일대 영문과 전 동료였던 리처드 데밍은 글릭의 사인(死因)이 암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