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잡편 어부(漁夫)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발자국을 몹시 싫어하여 자신의 발자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점점 빨리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빨리 걸을수록 발자국의 수는 자꾸만 늘어나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죽어라 하고 달렸다.
그리고 죽었다.
우리나라엔 '가난'이라는 자신의 발자국이 미워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고 또 뛰는 사람들이 참 많다.
크리에이터(광고창작자)라든지, 블로거,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광고 수익을 얻고자 불철주야 노력하고 활동하는 분들, 이런 불볕더위 속에서 땀으로 무장하며 실외에서 일하는 분들.
그러나 대부분 돈을 벌면 벌수록 자신의 가난은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아홉을 갖게 되면 하나를 더해 열을 채우고 싶고, 그러다 아흔아홉이 되면 이제는 하나를 더해 백을 채우고 싶어 진다.
그래서 죽어라 하고 달린다.
얼마 전 2017년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벌어진 홍수연 양의 비극적 실화를 영화화 한, '다음 소희'를 보았다.
영화는 회사가 콜센터 실습생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어린 여고생에게 실적을 강요하면서 꿈과 생기를 빼앗는 과정이 '희망+꿈=행복+삶'이라는 공식을 과감히 부인(否認)하는 죽음을 그린 영화다.
실제 홍수연 양은 생전에 수시로 야근하면서 부모에게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늦게 퇴근할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고충을 호소했다.
스트레스와 강도 높은 노동이 죽음의 원인이었다.
'장자'의 이야기를 하나 더 이어보겠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지독히 미워했다.
그러나 그림자는 그를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는 죽어라 따라오는 그림자를 떼어 내려고 죽어라 달렸다.
그러다 죽었다.
우리는 가난을 떼어 내려고 죽어라 달린다.
욕망이라는 그림자는 죽어라 따라온다.
그런데 '장자'는 말합니다.
그림자를 죽이기는 얼마나 쉬운가.
저기 나무 그늘이 있다.
그러니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가 앉으면 그만이다!
폭염이 사람을 잡고, 욕망이 이성(理性)을 누른다.
세상에는 휴식을 모르는 이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