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
- 알프렛 에드워드 하우스먼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는 지금
가지 따라 만발한 꽃을 드리우고,
부활절 맞아 흰 옷 입고
수풀 속 승마길 가에 화창하다.
이제, 내 칠십 평생 중
스물은 다시 돌아올 길 없으니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내게 남는 것은 오직 쉰뿐.
그리고 활짝 핀 꽃을 보기엔
쉰 봄은 너무 짧으니
수풀가로 나는 가야지,
눈꽃송이를 피운 벚꽃을 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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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iest of Trees
- Hausman, Alfred Edward
Loveliest of trees, the cherry now
Is hung with bloom along the bough,
And stands about the woodland ride
Wearing white for Eastertide.
Now, of my threescore years and ten,
Twenty will not come again,
And take from seventy springs a score,
It only leaves me fifty more.
And since to look at things in bloom
Fifty springs are little room,
About the woodlands I will go
To see the cherry hung with s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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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E. 하우스먼의 시 중 가장 애송되는 시의 하나이며, 그의 생전에 크게 호평을 받았던 시집 "슈롭셔의 젊은이" (A Shropshire lad)에 수록되어 있다.
시인은 만발한 벚꽃의 사랑스러움을 찬양하고 있다. 벚꽃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이를 즐기기에 인생은 짧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시인은 겨우 스무 살인데도 인생 칠십은 짧다고 한다. 남은 50년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없을 정도이니, 벚꽃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찬미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인생 칠십은 구약성경 "시편" (Psalms) 90장 10절에 "우리 삶의 연수가 칠십이요" (The years of our life are seventy) 부분을 원용하였다.
두보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 칠십은 옛날부터 드물다"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와도 부합된다.
해마다 피는 벚꽃은 자연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인생 칠십은 너무 짧다.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한편, 인생에서의 좋은 기회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많은 영시가 다루고 있는, 인생의 좋은 때를 놓치지 말라는 '카르페 디엠'의 시이다.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영어로 'seize the day'이며 '오늘 또는 현재를 붙잡으라'라는 의미이다.
지금 벚꽃이 화려하게 만발하였지만, 계절이 바뀌면 꽃이 지듯이, 우리 인생도 유한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언젠가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여 인생을 소중히 하라는 뜻도 담고 있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서재에 해골상을 옆에 두고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수양하는 그 메시지이다.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라고 하며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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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 : 1859-1936)은 1859년 3월 26일 잉글랜드 서부 우스터셔(Worcestershire) 포크베리(Fockbury)에서 태어났다.
어린 하우스먼은 버밍엄의 킹 에드워드 스쿨(King Edward's School, Birmingham)에 다녔는데,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고 시도 잘 지어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그렇게 탁월한 성적과 수상경력을 인정받아 1877년에 옥스퍼드 세인트존스칼리지(St John's College, Oxford)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에서 고전을 전공하게 된다.
1882년부터 1892년까지는 런던 특허청에서 근무하였으며, 십여 년을 거의 매일같이 퇴근 후에 대영박물관에 들러 라틴어 고전들을 독학한 끝에 고전문헌에 있는 오류를 수월하게 수정할 정도의 탁월한 실력자가 되었다.
하우스먼은 자신의 연구 결과물들을 여러 문예지에 기고하였고 자연스럽게 학자들의 주목을 끌게 된다.
그리고 1892년, 마침내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라틴어 교수로 임명된다.
1910년에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Trinity College, Cambridge)의 라틴어 교수로 채용되어 여생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내게 된다.
시집 "슈롭셔의 젊은이", "최종시집", "습유집" 등에 수록된 150여 편의 그의 시는 간결하고 고전미 넘치는 서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