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221. 그나저나

높은바위 2024. 6. 19. 07:04

 

221. 그나저나

 

                      고증식(1959.2.5 ~ )

 

불쑥 전화 온 어릴 적 고향 친구

애들은 뭐 하냐 묻길래

그냥 뭐 알바 비슷한 거 한다니까

요즘 애들 참 다들 왜 그러냐고

우리 애는 유학 가서 자리 잡았다고

그나저나

선생은 언제까지 할 참이냐 묻길래

올까지만 하고 명퇴할까 한다니까

뭐 한다고 나오냐고 평교사 아니냐고

아무리 그래도 교장은 하고 나와야지

그냥 교사를 누가 알아주냐고

니 마누라도 그냥 선생 아니냐 물으니

넌 남자 아니냐고 여자랑 같냐고

그나저나

요즘도 시는 쓰냐 묻길래

안 그래도 엊그제 시집이 나왔는데

주소나 좀 불러주라 했더니

됐다고, 너도 다 생각 있어 내겠지만

요새도 시집 읽는 사람 있긴 있냐고

그나저나

시집 내면 돈은 좀 되냐고

그 동네서 알아주긴 좀 알아주냐고

 

그나저나 바빠서 그럼 이만 끊겠다고

                                        (『현대문학』 2019.09)

 

* 이 시는 삶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는 '이야기 시'이다.

누구라도 생활의 한 풍경을 짐작하게 하며, 그려내는 풍경화 같은 시이다.

모든 시는 선전(宣傳)이다.

혹은 그래야 한다는 견해는 시는 순수한 음과 심상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견해와 조응한다.

이 상반되는 명제는 예술은 ‘놀음’이다라는 견해와 예술은 ‘일’이다라는 견해가 갖는 ‘기교’와, 예술이 갖는 ‘일’에서 어쩌면 가장 교묘한 별개의 설명에 도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어느 견해도 단독으로는 도저히 승인할 수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시는 놀음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즐거움이다라고 한다면 예술가의 고심, 기술, 계획에 대해서도, 또한 시의 엄숙성에 대해서도 정당한 판단이 이루어지진 않았다고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를 ‘일’ 혹은 ‘기교’라고 한다면 시가 가진 기쁨과 칸트가 예술의 ‘무목적성’이라고 부른 것에 대하여 이루어진 폭력을 우리들은 느낀다.

‘감미로운’과 ‘유익한’의 양자를 동시에 정당하게 판단하게 끔 우리는 예술의 기능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통부재의 괴로운 시와 해결사가 필요한 난해한 서정시로 독자가 외면하는 현재의 시문단에서, 누구에게나 공감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하는 시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의 현대 문학이 100년 넘게 외국 사조에 수입된 수입문학에 물들어져, 고유의 시 사조나 경향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의 고유한 정형시 시조(時調)라든가, 경기체가(景幾體歌) , 가사문학(歌辭文學)으로 맥을 이어 갔으면, 진즉(趁卽) 우리의 시가 세계에 더욱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학 나온 사람이 알아먹을 수 없는 시, 유식한 난해시를 꺼려하는 독자들을 위해, 늦게나마 감동을 주는 이야기 시(산문시) 운동을 하고 있는 이관희(李寬熙, 1940 ~ ) 시인과 산문의 시 문학인들께 경의(敬意)를 보낸다.

 

▲고증식 시인

1959년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나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94 <한민족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환한 저녁』 『단절’ ‘하루만 더』등의 시집과 시평집 『아직도 처음이다』를 냈으며, 우수문학도서선정, 개인창작지원금 등을 받았다.

1988년 밀양문학회 창립에 함께하여 <밀양문학>을 발간해오고 있으며 밀양문학회장, 한국작가회 이사 등을 맡았다.

밀양 제일고, 밀성고, 밀성여중 등에서 아이들과 자그락자그락 지내면서, 마음으로 가닿은 풀꽃 같은 이웃들 속에서 마알간 시 한 편 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살고 있다.

2020년 33년간 몸담았던 학교법인 밀성학원의 밀성고등학교를 명예퇴직하였으며(옥조근정훈장 수여), 2021년부터는 ‘밀양강 시의 거리’ 조성사업의 추진을 맡아 영남루 앞 밀양 강변에 시의 거리를 조성 운영하고 있다.

 

이관희 수필가 ·시인 

△ 대광 중고, 중앙대학 철학과, 서라벌예술대학 문창과, 美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 성서신학(문학) 졸업

△《현대문학》 수필 등단.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에 시·소설 입선.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논픽션부문 입선
△단상집 『개똥벌레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느냐』
△시집 『사랑하고 죽으라』 『말의 뼈다구』 『절규』 『외로움을 아세요』
△수필집 『예수 믿으세요』 『다시 연애하는 세상이 되어야 살 수 있다』 『교회야 나와서 놀자』 『꽃과 여인을 노래할 수 없는 시대』
△소설집 『아내의 천국』

△저서 『형상과 개념』 『창작에세이학 원론』

△현 계간 『산문의 시』 편집·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