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20. 눈이 내리느니

높은바위 2005. 6. 2. 06:11
 

20. 눈이 내리느니

                                  김 동 환



  北國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퍼부슬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 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래가

  漠北江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여다가

  치위에 얼어 떠는 白衣人의 귓볼을 때리느니.


  칩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발귀에 실어 곱게 南國에 돌려보내느니.


  白熊이 울고 北狼星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립어하는 우리네는

  서로 부등켜안고 赤星을 손가락질하며 얼음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최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춥어라, 이 치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짱 깔리는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눈이 내리느니 보오얀 흰눈이

  北塞로 가는 짐짝 우에

  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

 

                            1924년. 시집 ꡔ국경의 밤ꡕ



* 이 작품이『금성』에 처음 발표될 때의 제목은「赤星을 손가락질하며」였는데「눈이 내리느니」로 된 것은 1925년『국경의 밤』에 실리게 된 때부터이다. 이『국경의 밤』에 실린 일련의 시들을 보면 김동환이 우리 시단에 임한 정신적 자세를 읽을 수 있는데, 그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소외된 자의 비극적 좌절 체험을 국경 지방의 음울한 분위기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1920년대 감상적인 서정의 밭에 충격의 물살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