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104. 또 다른 故鄕

높은바위 2005. 7. 19. 23:20
 

104. 또 다른 故鄕

 

                                  윤 동 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나의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나의 고향으로 가자.

 

                    1948. 유고시집

 

* 이 시는 현실적으로 고향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이러한 현실 상황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고뇌를 표현한 시이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골’과 ‘아름다운 혼’, ‘나’, 그리고 ‘고향’과 ‘또 다른 고향’의 의미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백골’은 ‘아름다운 혼’과 대립하면서 늘 ‘아름다운 혼’을 제약하고 있는 존재이다. ‘아름다운 혼’이 ‘아름다운 또다른 고향’에 가고자 하며 진실로 행복과 평화가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정신이므로, ‘백골’은 이러한 초월 의지를 제약하는 현실적인 자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혼’, ‘백골’과 한 방에 누워 있는, 두 자아가 결합된 실존적 자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늘 ‘백골’과 ‘아름다운 혼’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고향’은 ‘어둔 방’이고,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이며, ‘풍화 작용’을 일으켜 ‘나’를 ‘백골’로 변질되게 만드는 암울한 시대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또 다른 고향’은 진실한 평화와 행복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세계이다.

  시인은 ‘지조 높은 개’를 등장시켜, 그 개가 어둠을 향해 짖지만, 그것은 자신을 쫓는 울부짖음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꾸짖는 시대의 외침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곧, 시인은 개 짖느 소리에서 자극을 받아 어둠이라는 조건 상황을 제거하려는 거부의 몸짓을 지닐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