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어(詩語)/ㅎ

하늘(3)

높은바위 2024. 8. 19. 07:28

 

지평선 위 까마득하게 높고 먼 궁륭형의 시계(視界). 고대의 사상으로 만물의 주재자. 종교적으로는 절대자, 조물주 및 그러한 절대세계나 이상세계를 상징함. 때로는 아버지나 남편을 뜻하거나 자유나 양심을 표상하기도 한다.

 

들어 보아라

사람이 땅을 죽이고

바다를 죽여가고

결국 하늘밖에 남지 않을 때

그 때

하늘에서 한 겨를인들 살 수 있겠는가

 

오 함께 죽을 저 푸른 하늘이여 어느덧 나 자신이여 (고은, '하늘', "아침이슬", p.33)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날마다 슬퍼함으로

슬픔에 배부를 것이요

다른 굶주림은

모두 잊으리라

 

사랑하는 자는

복 있나니

저들도 끝을 알 것이요

끝에선 하나가 먼저 떠나리로다

이 날에 하늘을 보리니

수식어는 모두 죽고

다만

하늘이리라 (김남조, '하늘', "바람세례", p. 18)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박노해, '하늘', "노동의 새벽", P. 13)